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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Feb 10. 2024

백석 시인이 명절을 생각하며 쓴 여우난골족

설에 읽는 시.

여우 난곬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뻑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에는 복숭아 나무가 많은 신리 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무, 고무의 딸 숭녀,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의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젖 담그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 그득이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아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족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 돌림하고, 호박떼기 하고 제비손아구손하고 이렇게 화디방등에 심지를 멪 번이나 동구고, 홍계닭이 멪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르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남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홍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자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백석 시인, 《조광》, 1935년 12월
백석, 《여우난곬족》, 애플북스 29-31쪽. 2018년.
장기용 요한 신부님이 설 성찬례 설교를 하실 때, 설 음식 이야기에 담긴 민속 이야기를 하셔서 생각나는 시인 여우 난곬족을 인용합니다. 2024.2. 10 공현 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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