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인문학이다.
묻는 믿음. : 이해를 구하는 믿음.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고백록에서 자주 믿습니다(credo)가 아닌, 의문형 종결어미(입니까?이었습니까?)로 문장이 끝난다. 내 미략하게나마 라틴어로 쓰면, ego credo deum, ille creavit terram et caelum.(사도신경,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만들었습니다.)이 아닌, quod creavit terram et caleum?(누가 하늘과 땅을 만들었는가?)이라고 쓰고 있으며, 의문이 날 때마다 하느님께 여쭙는, 이해를 구하는 믿음으로써 믿음살이를 하면서 드는 의문을 푼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다. 하느님과 사귀는 하늘나라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만족", "자기 자랑", "호기심", 필요 이상의 소유, "탐식"(필요 이상의 음식을 탐함. 물론 이분이 탐식을 경계하는 이유는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일본의 배우인 마츠모토 유타카 배우처럼 배우로서 몸을 돌보는, 자기 관리를 하기 위함이 아닌, 배를 채우는 필요를 넘어서는 음식은 인간의 정욕에 지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이라는 육신의 "정욕"과 "습관"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언어학 이론 : 음절이라는 말을 씀. 오늘 이호권 교수님께 한글문화론을 배웠는데, 한글은 음소글자(또는 자질글자)이지만, 글을 읽을 때는 음절문자이다. 자음과 모음으로 글을 쓰지만, 읽을 때는 한 음절로 읽는 문자인데, 이러한 언어학 이론을 고대인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배우는 인문학도 고대에서부터의 학문전통에 상당히 빚을 지고 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해 겸손하다 : 그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 성육신하신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 그 자신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mediator)이심을 곧 성육신을 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죽임당하심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청파 감리교회 김기석 목사님에 의하면, 불교 승려 한 분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면 죽임을 당함을 알지만, 죽임을 당함을 알지만, 죽임 당함을 피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바로 의문이 풀림-하느님과의 관계를 맺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와 능력의 한계를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2024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