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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 Mar 22. 2024

독서 100권의 기억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나이가 훌쩍 넘었지만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독서'라고 대답했던 때가 있었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간간히 한 두 권 읽긴 했겠지만


 내가 책을 읽었던 시기가 두 번 있는데 두 번 다 군대에서 읽었다. 그렇다고 내가 군대를 두 번 갔다는 말은 맞다. 첫 번째는 의무복무로 해병대에 갔었는데 해병대는 해병대만의 군기라고 해야 하나?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기상과 동시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편히 주무셨습니까?"를 외치고 바로 청소를 시작하는데 이병은 커튼을 걷고 손걸레질을 하고 일병은 빗자루를 잡고 상병은 마대걸레질을 했다. 병장은 최대한 누워있을 수 있을 만큼 누워있거나 무얼 하든 자유다. 나는 겨울에 병장이 되었는데 따뜻한 커피를 타와서 침상에서 다릴 꼬고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었다. 그렇게 독서를 시작했고 오쿠다히데오의 공중그네부터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까지 흔하디 흔한 책을 읽었다. 신기한 것은 이때 읽었던 기억이 차곡차곡 저장이 되어 있었던 것인지 차후에 세계여행을 갔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 시베리아 횡단열차, 인도여행 등 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많은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두 번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에서 장교로 복무를 할 때이다. 군대가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여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학사장교로 군대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다녔다. 아무튼 그렇게 간부로 군대생활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를 했다. 리더로서의 자질도 없었고 상급자에 대한 존경도 없었다. 막막했다. 남들은 한 번 겪어보고 아는 걸 나는 두 번 겪어보고서야 느낀 것일까?

 무기력하던 찰나 부대 대장님께서 장병들 사기진작과 자기 계발의 목적으로 자신의 꿈과 꿈을 이루기 위한 실천 같은 걸 적어서 관물대에 부착하도록 하셨고 그때서야 나도 정신을 좀 차렸던 것 같다. 꿈은 세계일주라고 적었고 실천방법으로 독서 100권을 목표로 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독서가 시작되었다.


 휴가를 나오면 고속버스터미널에 반디 앤 루니스 서점이 있었는데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서 책 읽기에 참 좋았다 거기에 앉아서 책 읽다고 책을 사들고 부대가 파주에 있었는데 경전철 구석 바닥에 주저앉아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왔다. 주말에 일산에 왔다 갔다 할 때도 경전철 구석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8개월 간 GOP에 있을 때도 책만 읽었다. 나는 저녁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전반야 순찰을 했었는데 방탄복 안에 책을 들고 다니면서 소초에 들려 언몸을 녹이며 한 두 페이지라도 더 읽었다. 전반야 순찰을 마치고 와서도 스탠드에 불을 켜고 모포를 뒤집어쓴 채 책을 읽었다.(간부도 다인실을 이용했다.) 놀라운 건 재밌는 책은 잠도 쫓아냈다. 이때 느낀 건 책은 막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책에 줄도 치고 필기도 하고 페이지를 접기도 하고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목민심서인가 어떤 책에서 말하기를 책을 접어서도 안되고 뒤로 구겨서 읽어서도 안되며 책을 아껴서 소중히 다루라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하면 책이 잘 안 읽혔다. 마치 옷 사놓고 더러워질까 봐 옷장에만 걸어두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독서 100권을 마치니 제법 똑똑해져 있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용사가 있었는데 이 녀석을 말로 이기는 간부가 없었다. 말로 이 용사를 훈육하다가 이길 수 없으니 엎드려뻗치게 하거나 완전군장 매고 연병장을 돌게 한다던지 감정적으로 얽히게 되는 것이었다. 마침 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막 정독한 논리왕이었고 미국용사와 나는 담론을 시작했다. 한국말을 또박또박하던 미국용사는 점점 말이 어눌해지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가 이렇게 말을 잘했었나? 괜히 미안해졌다. 이후로 미국용사는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한국의 군대문화에 잘 적응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읽은 책이 고작 100권 밖에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매진했을 때의 나는 분명 열정적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자신감도 생겼고,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멋들어지게 독서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빠져서 TV로 넷플릭스를 켜놓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본다. 밥상을 차려놓고 콘텐츠를 선택하지 못하면 숟가락을 들지 못한다. 더 늦기 전에 다시 독서를 시작해야겠다. 남들 유튜브보고 넷플릭스 볼 때 나는 다릴 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 하면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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