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애 Apr 23. 2024

내가 편안한지가 옳은 행동을 했는지 보다 중요하다.

초자아 단속하기


제주도 여행 중 카페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연분홍의 책표지 디자인이 한눈에 말랑하고 가벼워 보였다. 대충 훑어봐야지 하고 집어 들었다 혼쭐이 난 책,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이다. 읽다 말다 했다. 책을 수십 번 뒤집어 놓을 정도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첫 번째, 나에게 분노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의 불쾌가 다시 느껴졌다.

두 번째, 분노라는 정서에는 억울함, 기대, 심판, 무력감, 두려움 등이 존재한다는 설명이 완전히 새로웠다.

세 번째, 나에게 중요한 인물들이 내뿜는 분노를 해석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분노를 배출해 본 적도, 표현해 본 적도 없다. 분노하는 나를 다그쳤기 때문이다.



분노는 성숙하지 못한 거야.

물론, 네가 분노할 만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과연 지애 네가 잘못한 부분은 없을까?



서당 훈장님 마냥 채근하기 바빴다. 분노하는 나에게 옳은 이치, 규율, 덕목 등을 들이밀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청소년 시절에는 '예수님은 누가 왼쪽 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내주라고 하셨어. 내가 화를 참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실 거야. 칭찬해 주실 거야.'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참고 인내할수록 훌륭한 인격의 사람이 될 거라 믿었다.


분노라는 감정을 뭉텅이로 싸잡아 쓰레기통에 넣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참자.' 분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미성숙함의 표현이라고 믿었다. 다음날 내가 화를 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고, 멋쩍어진 공기를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분노에 대해 무지했다. 부정적 정서는 곧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오해였다. 분노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그 이면에는 다양한 원인 감정이 있는 줄 몰랐다. 분노가 느껴질 때 나의 원인 감정을 살펴보고 돌봐주었더라면 훨씬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쉽다.


이 책에서는 분노라는 정서(심리학에서는 '감정'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면의 원인 감정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분노 뒤에 숨어 있는 6가지 원인 감정>


                  ①심판      ②기대       ③자기 요구

      ④감정의 연결    ⑤두려움     ⑥사랑과 희생




'왜 분노할까?' 뿐만 아니라 '왜 분노를 억누를까?'라는 질문도 함께 가지고 읽었다. 분노를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내 모습을 인지하고, 알맞은 분노 표현을 배우려고 했다. 분노를 억누를 때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밑줄을 그었다.


그동안 나는 '착하고 성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화를 참아왔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불편한 진실부터 받아들이기로 한다.


 화를 참는 것이
나에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에 참았을 뿐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③자기 요구를 통해 분노를 억눌렀다. 마음 넓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당당히 요구했다. 화를 참음으로써 온화하고 긍정적이며 좋은 사람이라는 내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유지되면 마음이 편했고, 안전하다고 느꼈다.


'네가 괜찮으면,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상대방의 기분과 마음을 살피며 최대한 맞춰주는 게 습관처럼 굳었다. 20대 땐 특히 심했는데,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기진맥진할 때가 많았다. 억지로 웃었고, 억지로 밝았고, 억지로 맞장구 쳐주느라 겨드랑이에 땀도 났고 어깨는 긴장감으로 솟구쳤다.


상대방이 미묘하게 내 신경을 건드려도, 그 자리에서 나의 불편함을 드러내지 못했다. 더 밝게 웃었다. 상대를 높이고 나를 더욱 낮추면서 광대가 되었다.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버리며 나의 불편함을 덮어버렸다.


문제는 억압된 불편함(분노)은 그대로 차곡차곡 쌓였다는 것이다.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불쾌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 불편함이 세 번 이상 쌓였을 때 나는 그 친구를 끊어냈다. 나만의 쓰리아웃 제도였다. 너의 말과 행동에 내 기분이 나빴다고 표현하지 못한 채. 그런 식으로 내가 적극적으로 끊어낸 2명이 있고, 알아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2명이 있다.


책에서 제시한 4가지 격률을 다시 적어본다. 특히 감정을 습관적으로 억압하는 나에게 효험이 있는 통찰들이다. 요지는 내 감정을 돌보는 것, 인위적 헌신을 줄이거나 멈추는 것이다.



1) 내 감정이 책임보다 중요하다.

 내 감정을 1순위에 두고 불편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해야 한다고 여겨도 그렇다.


2) 내 감정이 옳고 그름보다 중요하다.

내가 편안한지가 옳은 행동을 했는지보다 중요하다.


3) 내 감정이 상대방보다 중요하다.

네가 기쁘길 바라지만 나의 기분까지 희생해 가며 너를 기분 좋게 하고 싶지는 않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상대방이 실망하지 않도록 나의 억울함을 선택하지 않는다.


4) 내 감정이 화목보다 중요하다.

갈등이 없으면 좋지만 갈등을 없애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면 차라리 갈등을 일으키겠어.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분노라는 커튼을 열어젖힌다. 내 분노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따뜻하게 관찰하고 차분하게 탐구하기로 한다. 분노라는 신호가 나에게 알려주고 있는 진짜 의미를 알아낸 후, 나의 성숙과 행복에 기여할 모종의 가치를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내 불편함을 알맞게 드러내는 연습을 시작한다. 불편함을 드러낸 후의 관계가 때로는 더 풍성하고 깊어지는 것까지 경험해 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