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독립
엄마가 아빠와 다퉜다.
20년간 그래왔듯 엄마 마음을 풀어주려다 잠시 멈춘다. 엄마와 필요 이상의 심리적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가 속상해하면 나의 자동화된 반응은 저절로 튀어나온다. 엄마의 울적함은 나에게 고속도로처럼곧장 온다. 그렇다. 오랜 시간 감정적으로 나는 엄마이고, 엄마는 나였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위로 담당이었다. 문제는 동시에 아빠 흉을 봤다는 것이다. 엄마 마음이 풀리지 않아도 속상했지만, 풀려도 괴로웠다. 아빠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엄마 말만 듣고 엄마 편을 들었으므로.
'엄마, 지금 아빠랑 다퉈서 속상하구나.' 하고 전화를 끊었다. 속으로 말했다.
엄마,
아빠와의 문제는 1:1로 해결했으면 좋겠어.
나를 끌어들여 삼각관계로 만들지 말아 줘.
성장과정에서 내 부모의 불행을 보는 일은 슬펐다. 내 노력으로 부모님이 덜 불행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 노력이라는 것은 고작 엄마 편을 드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아빠에 대한 미안함이 커졌다. 나에겐 엄마, 아빠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 분 모두 행복하길 바랐다.
화목한 가족이 가장 부러웠고, 늘 화가 나 있는 아빠와 눈물을 쏟아내는 엄마를 보는 게 싫었다. 한 번씩 한심했다. '도대체 이들은 왜 같이 사는 걸까?'
내가 가정을 이루고 춘이를 낳고서야 내 부모를 평가자의 시선이 아니라 동료로서 안쓰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한 부부.
서로 깊이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일평생을 살아가는 부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런 부부이길 바랐던 마음은 애초에 지나치게 높은 잣대였음을 깨달았다. 세상엔 훌륭한 사람 자체가 적다. 우리 부모님이 훌륭하기까지 바랬던 것은 내가 어렸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내 부모가 훌륭까지 했으면 자녀 된 나는 또 얼마나 부담스러웠을 것인가?
내 부모는 각자의 일터에서 성실히 일했고, 서로의 애정이 흔들릴 때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으며, 학자금 대출 없이 자식 셋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사치도, 늦잠도, 술담배도 없었다.
끝내 이어붙인 부부생활과 20년 간의 자녀양육. 결혼과 출산이라는 본인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고군분투했다. 기본을 해냈다. 기본이 아니라 업적일지도 모른다.
도망가 버리지 않고, 삶을 놓아버리지 않고 꿋꿋이 맡은 생을 끝내 살아내었다는 것 자체로 박수받을 만한 일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더 이상 내 부모에게 바라는 마음이 없다. 있는 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