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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Jul 23. 2024

스팀세차와 마켓컬리

취미는 사과, 특기는 웃기입니다.

오늘 오후, 신촌 유플렉스에서 스팀 세차를 했다. 하원 시간 맞추느라 후다닥 주차장에 도착해서 보니 춘이 봄이 카시트 고정 레버가 사라져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젊은 남성이었던 사장은 본인도 사업장에 남겨진 부품 하나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보관하고 있으니 다시 오라고 했다. 셀프 세차를 하는 것이 번거로워 8만 원을 주고 맡겼다. 신촌 유플렉스 지하 5층에 있는 세차장으로 다시 방문해 달라는 그의 말엔 '죄송하다' 말 한마디가 없다. 뉘앙스, 태도, 행간, 호흡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내 말투는 카시트 레버가 없다는 문의를 할 때조차도 만성적으로 습관적으로 상냥했다. 불필요하게. 언제 찾으러 가면 되느냐 물을 때도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반려동물 호텔에 맡겨둔 내 강아지를 데리고 오려는 사람의 톤이었다.


오늘 새벽, 마켓컬리 상품이 도착했다. 우리 집은 302동 1001호인데, 301동 1001호 물건이 와 있다. 맞바뀐 것이다. 마켓컬리에 문의하자 젊은 여성이었던 상담원은 첫마디부터 '죄송합니다' 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5번은 들은 것 같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져 오는 공기 자체도 미안함이었다. 정확하게는 배송 기사 잘못인데. 불편사항 접수야 본인 업무겠지만. 마켓컬리 전화상담원은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혹은 본인 업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그렇게 바짝 엎드렸던 것일까?


그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반나절 안에 일어난 두 사건이 또렷하게 상반된다. 무엇이 단단히 학습된 것일까? 각자를 강화시킨 건 어떤 말들이었을까? 내가 가진 '여성성 관념' 떠올려보았다. 30여 년 동안 길러진 여성성이었다.

여자는 자주, 그리고 활짝 웃는 게 좋다. 무표정한 얼굴은 매력 없다.

여자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면 안 된다. 드세면 안 된다. 부드럽게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여자는 포용하고,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게 자연스럽다.

여자는 지배적이고 공격적이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약간 수줍은 듯 귀엽게 행동하는 게 보통이다.


여기서 여성성은 X, Y염색체를 하나씩 갖고 있는 사람(여성)을 가리키는 말을 넘어선다. <남성 해방 : Why Feminism is good for men>에서 백인 남성 저자 옌스 판트리흐트는 여성성/남성성의 문제를 동시에 짚는다. 성규범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옥죈다는 것이다. 양육, 교육, 사회화, 사회 규범, 기존 사회의 이미지와 권력 구조에서 여성(남성)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 학습시킨다. 나는 여성성 관념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통제적이었는지 이제야 알기 시작한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서야. 여성성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것 중 하나로 나의 여성성을 인식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여성성을 적절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마침내 여성 김지애가 아니라 <인간 김지애>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을 따지고, 내가 가진 다양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길을 선택할 수 있고, 내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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