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물 진료를 주로 하는 아빠 덕분에 나는 반평생을 군 소재지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던 23살 어느 겨울, 초등교원임용경쟁시험 지원 공고가 떴다. 중복 지원은 불가능. 한 지역만 골라 시험을 칠 수 있다. 보자마자 결심이 섰다.
아, 나는 군에서는 살만큼 살았다.
특별시로 가자.
아직도 서울은 나에겐 여행지다. 매일이 새롭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서울 시민으로 생활하며 기막히고 신기함을 느꼈던 찰나들을 떠올려 본다.
1. 시골에 다녀왔어요.
“지난 주말에 뭐 했어?”
“이번 방학 때 어디 갔다 왔어?”
나를 거쳐간 서울 초등학생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답했다.
시골에 다녀왔어요.
“시골 어디?”
한번 더 물어야 그제야 지역의 이름으로 답한다.
“진주에 다녀왔어요.”
“목포에 다녀왔어요.”
그들에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The others다. 서울의 여집합은 시골. 서울이 아니면 그 밖이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교육의 중심지인 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일 테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때면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아프리카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다. 나는 케냐 사람인데 선진국 사람들이 모로코, 르완다, 짐바브웨 등과 한데 묶어 '아프리카 사람'으로 뒤집어 씌우는 느낌이랄까.
그때마다 나는 '얘들아, 우리나라엔 서울만 있는 게 아니야. 사회과부도 지도를 펼쳐보자.' 하며 우리나라 삼천리 금수강산을 보여주었다.
2. 전 국민이 다 아는
내가 늘 챙겨보는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록>. 얼마 전, 짱구 엄마 역할로 오랜 기간 활동한 성우가 나왔는데 지하철 안내방송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었다. 스윽 지나가는 한 자막을 보자마자 나는 토끼눈이 되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지하철 안내방송 목소리의 주인공
우리나라엔 지하철이 없는 지역이 더 많은데? 나는 24살에 서울에 오기 전까진 단 한 번도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는데? 전 국민이 다 아는 목소리가 아니다. 지하철이 있는 지역의 시민들에게 익숙한 안내방송 목소리다. 심지어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 살고 있어도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는 목소리다. 1초도 안 돼 사라져 버린 한 줄의 예능자막이지만 꽤 오랫동안 내 머리와 마음속에 남아 동동 떠다녔다.
3. 개천에서 용 났네
한 번은 직장 동료가 나를 보고 '개천에서 용 났네'하셨는데 뒷맛이 썼다. 일단 나는 용급이 아닐뿐더러,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이 개천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개천은 '개-'라는 우리말 접두어에 내천(川) 자가 붙은 낱말이다. 시내면 시내고, 하천이면 하천이지 왜 개천일까? 개나리도 나리꽃 보다 작고 좋지 않은 꽃이라고 해서 ‘나리꽃’에 개를 붙인다. 살구도 먹지 못하면 개살구라고 부른다. 이류 혹은 아류의 의미로 접두어 '개-'를 붙이는 것이다.
내가 시골에서 온 것은 맞지만, 시골을 이류 또는 아류로 취급하는 느낌은 서운했다. '완전 시골에서 왔네!' 하면 될 것을 ‘개천에서 용 났네.’ 하는 것일까? 동료의 의도는 100% 칭찬이었지만 듣기에 민망해 함께 웃을 수 없었다. 속으로 ‘제 부모는 지금 그 개천에서 살고 계셔요.’라고 말했다.
4. 나의 사랑, 나의 도시, 서울 특별시
10년 전,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직감했다.
난 평생 이 도시에서 살게 되겠구나.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각종 시위와 행사가 열린다. 버스가 막혀 속 시원하게 지나가지 못할뿐더러, 온갖 쩌렁쩌렁 소리에 귀가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의 요란함과 활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다양성을 포용하는 서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내 고향의 광장에선 장애인, 동성애자, 외국인노동자의 인권과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없다. 고향 사람들이 광장에 모인다면, 그것은 우리 고장의 특산품을 알리는 '수박 축제' 때문이다. 지역 홍보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이벤트다. 일회성 해쳐 모여다. 서울에서는 심지어 인권, 지구환경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이 모이기도 한다. 간혹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광화문 광장은 볼 때마다 톡 쏘는 신선함과 개운함을 준다.
소수자가 숨어 지내지 않는 곳,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시.
이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어려움을 알리며 자기 목소리를 낸다. 시민 혹은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언론이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엎치락뒤치락 팔딱거리는 것 자체가 건강해 보인다. 가부장이 가정 내 모든 대소사를 결정하는 조용한 가족회의가 아니라,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앞다투어 제시하는 바람에 조율하고 타협하느라 시끄러운 가족회의 같다고나 할까.
나이, 성별 측면에서도 비슷하다. 이곳에선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적다고 함부로 말을 놓지 않고, 여성이라고 해서 일단 낮추지 않는다. '평등' 혹은 '존중'이라는 분위기가 내 고향보다 훨씬 내실 있게 퍼져있다고 느낀다. 내 고향에서는 일단 나이가 많거나, 남성이면 흑돌을 쥔다.
온몸에 피어싱을 해도, 머리를 형광색으로 물들여도, 정체 모를 차림의 옷을 입고 다녀도, 남성 커플이 손을 잡고 다녀도, 여학생이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녀도 '그럴 수 있지'하는 도시. 포용력을 가진 도시. 결국 온갖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 똘레랑스가 있는 나의 도시,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