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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May 21. 2024

군민이 본 서울 부심

읍면리


대동물 진료를 주로 하는 아빠 덕분에 나는 반평생을 군 소재지에서 나고 자랐다.


경기도 포천군에서 태어나 7살 때 경남의 시골로 이사 왔다. KTX는 언감생심, 지하철은 꿈도 못 꿨다. 초중학교 9년 동안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걸어 다녔다.


고등학교 때 잠시 마산시 소재의 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 기숙학교 생활을 했지만 입학한 대학교는 충북 청원군.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군민'이라는 단어는 내 정체성의 일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던 23살 어느 겨울, 초등교원임용경쟁시험 지원 공고가 떴다. 중복 지원은 불가능. 한 지역만 골라 시험을 칠 수 있다. 보자마자 결심이 섰다.



아, 나는 군에서는 살만큼 살았다.
특별시로 가자.


서울지역가산점(7점)이 없어 불리했지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지 하며 심지를 굳힌다. 남들 공부하는 것 두배로 하면 되지 하며. 막연한 계산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엽고 당차다.


아직도 서울은 나에겐 멋진 여행지 같은 곳이다. 매일이 새롭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서울 시민으로 생활하며 기막히고 신기함을 느꼈던 찰나들을 떠올려 본다.



1. 시골에 다녀왔어요.


“지난 주말에 뭐 했어?”

“이번 방학 때 어디 갔다 왔어?”

나를 거쳐간 서울 초등학생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답했다.


시골에 다녀왔어요.


“시골 어디?”

한번 더 물어야 그제야 지역의 이름으로 답한다.

“진주에 다녀왔어요.”

“목포에 다녀왔어요.”


그들에게 서울을 제외한 지역은 The others다. 서울의 여집합은 시골. 서울이 아니면 그 밖이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교육의 중심지인 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일 테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때면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아프리카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다. 나는 케냐 사람인데 선진국 사람들이 모로코, 르완다, 짐바브웨 등과 한데 묶어 '아프리카 사람'으로 뒤집어 씌우는 느낌이랄까.

출처 : 픽사베이


그때마다 나는

 "얘들아, 우리나라엔 서울만 있는 게 아니야. 사회과부도 지도를 펼쳐보자."


하며 우리나라 삼천리 금수강산을 보여주었다.






2. 전 국민이 다 아는


내가 늘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솔로> 그리고 <유퀴즈온더블록>.


얼마 전, 짱구 엄마 역할로 오랜 기간 활동한 성우가 나왔는데 지하철 안내방송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었다. 스윽 지나가는 한 자막을 보자마자 나는 토끼눈이 되었다.


출처 : 유퀴즈온더블럭
 전 국민이 다 아는
지하철 안내방송 목소리의 주인공


우리나라엔 지하철이 없는 지역이 더 많은데?

나는 24살에 서울에 오기 전까진 단 한 번도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는데?


전 국민이 다 아는 목소리가 아니다. 지하철이 있는 지역의 시민들에게 익숙한 안내방송 목소리다. 심지어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 살고 있어도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는 목소리다.


1초도 안 돼 사라져 버린 한 줄의 예능자막이지만 꽤 오랫동안 내 머리와 마음속에 남아 동동 떠다녔다.




3. 개천에서 용 났네


한 번은 직장 동료가 나를 보고 '개천에서 용 났네'하셨는데 뒷맛이 썼다. 일단 나는 용급이 아닐뿐더러,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이 개천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개천은 '개-'라는 우리말 접두어에 내천(川) 자가 붙은 낱말이다. 시내면 시내고, 하천이면 하천이지 왜 개천일까?


개나리도 나리꽃 보다 작고 좋지 않은 꽃이라고 해서 ‘나리꽃’에 개를 붙인다. 살구도 먹지 못하면 개살구라고 부른다. 이류 혹은 아류의 의미로 접두어 '개-'를 붙이는 것이다.


내가 시골에서 온 것은 맞지만, 시골을 이류 또는 아류로 취급하는 느낌은 서운했다. '완전 시골에서 왔네!' 하면 될 것을 ‘개천에서 용 났네.’ 하는 것일까? 동료의 의도는 100% 칭찬이었지만 듣기에 민망해 함께 웃을 수 없었다. 속으로 ‘제 부모는 지금 그 개천에서 살고 계셔요.’라고 말했다.


덧) 세 일화 모두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지만, 이게 다다! 서울에 관한 이 밖의 첫 기억들은 대부분 참신했고, 개운했다. 내가 서울을 사랑하게 된 수많은 이유를 다음 지면에 이어 붙여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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