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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Jul 16. 2024

내 지붕은 아빠에서 남편으로 바뀐 것일까?

육아와 커리어


육아가 버거워졌다. 춘이의 전인적 발달과 정갈한 살림살이를 위해 이모양저모양으로 노력하고 애쓰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일련의 일들이 쌓이자 몸과 마음이 지쳤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만 먹는다. 육아휴직 중인데, 혼자서 케이크까지 먹는 건 누리기엔 버거운 호사 같다.

-남편, 춘이 반찬 그릇에 소고기를 잔뜩 담는다. 내 그릇엔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잖아' 하며 적게 옮긴다.

-출퇴근으로 고생했을 남편을 위해 샤워시간에 빨리 몸을 닦는다.

-테라로사 레몬치즈케이크를 먹고 싶지만 주문은 하지 않는다. 춘이가 먹을만한 단팥빵을 고르거나, 셋이 무난하게 함께 먹을 수 있는 블루베리크림치즈빵을 먼저 떠올린다.

-나는 운전 연습을 계속하고 싶은데, 춘이를 태우고 운전하자니 걱정이 되어 주말 나들이를 떠날 때 차키를 남편에게 넘긴다.


내 정체성을 스스로 '보조인'으로 규정하고 살고 있나 싶더니 우울감이 찾아왔다. 육아휴직 1년 반만의 일이다. 나는 '보조인'을 하려고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닌데. 나는 '보조인'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살려고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이 아닌데.


결혼 전에는 아빠에게 허락을 받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의 허락을 받는 신세가 되었나 싶었다. 지붕만 바뀐 것인가.


평소 내가 가깝게 생각하는 대학 친구에게 내 마음을 집약시킨 후 축약해 말했다.


나 요즘 육아가 버거워.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 친구이자 육아 선배였다. 예상 답변은 "지애야, 원래 그 시기에는 아기에게 손이 많이 가잖아. 나도 그랬어. 많이 힘들지?"


그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비켜갔다. 나의 슬픔, 시무룩함, 힘듦을 '다 그래' 세 음절로 혹은 '원래 그래' 네 음절로 퉁쳐서 뭉개지 않고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먼저 공감해 주었다.

-가족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일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으니 육아가 가사가 얼마나 고된 일이야.


내 노고를 제대로 평가하며 제자리에 세워주었다.

-출근하는 남편도 결국 너의 육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둘 중 네가 일을 쉬어주는 '덕분에' 남편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고마워해야 할 이이야.

-남편은 커리어를 이어나가면서도 아내와 아이까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지금 지애 집의 중심은 지애야.

-네가 아무리 노력하지 않는다고 해도 교사인 지애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도 보통의 엄마보다 훨씬 뛰어난 질의 육아를 하고 있을 거야.


김지애와 춘이 엄마를 구별해 주었다.

-결국엔 춘이는 스스로 살아갈 존재야.

-춘이에게 엄마의 행복도 굉장히 중요해.

-언젠가 지애가 했던 생각과 모든 노력들, 어려움들이 한 겹 씩 쌓여 너라는 사람을 완성해 줄 날이 올 거야.


마지막으로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측면의 다양한 실천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럴 땐 다른 사람, 다른 상황 크게 생각 안 하고 하나씩 해나가는 게 도움이 되더라.

-육아하는 게 '내가 희생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아이와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가질 특권을 가졌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나는 일부러 스벅 가서 제일 비싸고 먹고 싶은 걸로 시키고, 혼자 먹는 밥도 제일 비싸고 맛있는 걸로 시켜 먹으려고 노력해.

-이 시간을 조금만 더 견디고 더 나아가 조금 즐겨보자.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마치 익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냥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하고 생각하고 이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거야.



친구의 메시지를 읽다 여러 번 시큰했다.


육아가 버겁다 했을 때 우리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행복한 시간인데 왜 그러느냐', '엄마가 시무룩해서 춘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가면 어쩌냐' 했다.


나의 욕구나 정서보다 '춘이 엄마로서 마땅히 해내야 할 일'을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너무 쉽게 내 마음을 뭉갰고, 스스로를 탓하거나 자책했고, 춘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30대.


한창 커리어를 쌓아나가야 할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육아가 시작되면 여성은 사회적 단절을 겪는다. 육아휴직을 쓰고 주양육자 역할을 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둘째라도 낳으면 게임 끝이다. 남녀 임금 차이, 승진 비율 차이가 이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결국 격차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박사과정에 진학했을 테고, EBS 강의를 계속했을 것이고, 해외에서 얼마간 살아보기 위한 계획을 짰을 것이다. 춘이가 태어난 순간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었다. 앞뒤좌우에서 나를 향해 수많은 should have p.p가 쏟아졌다.


한편

남편은 임신, 출산의 과정에서 털 한오라기 하나 뽑히지 않았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라 고생은 해도 여전히 커리어를 쌓고 있으며 올해 진급을 했다.


육아 폭풍우 한가운데에 똑바로 서 있는 등대 같은 친구의 말 덕분에,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웅크려 있던 나는 다시 고개를 들고 허리를 폈다.


눈꺼풀을 들어 앞을 똑바로 보고 기지개를 켰다. 나의 가정 내 기여도를 정확히 인지했다. 내 희생의 값을 정확히 매겼다.



1. 내가 육아휴직을 써준 덕분에 남편은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2. 춘이도 결국 스스로 혼자 살아갈 존재다.

3. 나에겐 내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주,

대광어회를 먹고 싶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치킨 보다 비싸네. 광어회는 한 번 먹으면 끝 아니냐?' 했다. 치킨 계산법이다. 나는 대광어회를 먹고 싶다는 나의 욕구를 그날로 접었다. '맞아, 치킨보다 별로지.'


오늘 한살림 매장에서 자연산 대광어회 300g을 25,000원에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남편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내가 먹고 싶으니, 먹겠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춘이와 둘이서 시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하면 반대했다. 기차를 타는 것도, 시부모님이 아무거나 먹일 음식들도, 흡연을 하는 시아버지도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나는 부녀 둘만의 여행을 보내주기로 했다.


춘이는 결국 스스로 살아갈 존재이고, 춘이에겐 엄마의 사랑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도 필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무게 균형추를 나로 옮겨본 후, 나는 다시 밝아졌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것에 비유되는 미숙한 방어기제 '전치(displacemnet)'를 사용해 남편을 대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회복될 우울감이었나 허무하기도 했지만, 이제 방법을 알았다 하는 기쁨도 있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기 전까지 나는 내 안팎의 조화와 균형을 잡으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친구의 따뜻하고 시원한 말에는 사실은 내가 나에게 해줘야 했을 응원, 위로의 말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구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곁에 둔 똑똑하고 선량한 친구 덕분에 시시하리만큼 가뿐히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육아와 커리어라는 거친 바다.


항해 중 뒤엎어진 배를 다시 바르게 세운 후, 방향키를 다시 잡는다. 기우뚱은 할 수 있어도 이전처럼 완전히 뒤집어지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전 02화 예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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