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택동산 공동유골함을 아시나요?

by 김지애



엄마는 할아버지를 '자연으로 날려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2차 장지로 봉안당이 아니라 자연장 방식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요양병원 폐쇄병동에서 답답하셨을 할아버지를 하늘로 훨훨 날려 보내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장례가 진행되고 말았다. 아빠가 장례지도사와 중요한 부분들을 논의했는데, 아빠와 장례지도사 간 의견 소통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가 생각했던 화장 후 장례방식의 핵심은 '뿌리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자유를 드리는 것. 그러나 우리가 할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도착한 2차 장지는 공동 유골함이었다. 유택동산, 다시 말해 공동묘지다. 화장한 유골을 구분하여 고인마다 각각의 칸에 보관하는 납골당이 아니라, 모든 유골을 한 바구니에 보관하는 것이다. 이런 장례 방식도 있구나. 이미 다른 분들의 유골이 들어있었고 추가로 할아버지 유골도 함께 넣을 곳이었다.


순간 구름들이 잿빛으로 변하며 무겁게 아래로 내려앉았다. 마음에 번개가 쳤다. 어? 뭔가 이상하다.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엄마는 할아버지 유골을 직접 유골함에 넣었다. 그리고 돌 뚜껑을 덮었다. 뚜껑을 덮은 후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유골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이냐는 엄마의 혼잣말에는 당황스러움, 비극의 시작을 예감한 듯한 비명 섞인 울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처연한 혼잣말을 듣자마자 나는 행렬 앞으로 나가 장례지도사에게 물었다.


저기요, 장례지도사님.
공동유골함에 들어간 유골은 어떻게 처리되나요?


장례지도사는 나의 질문이 황당하다는 듯 터무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죽었는데 유골 처리 방식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식이었다. 장례지도사는 무보수가 아니라, 상주(고객)의 돈을 받고 장례 전반을 이끌며 도와주는 일을 하는 직업인이다. 그럼에도 그는 화장장을 운영하는 곳에서 관여하는 일으므로 자기는 모른다며 무책임하고 멍청하게 일축했다.


시설에서 하는 거라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저희는 모릅니더.


바다에 뿌리는 게 나았으려나 후회하며 속상해하는 엄마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장례지도사가 뒤돌아 쏘아붙였다.


요즘은 바다에 안 뿌립니더.
다른 분들이랑 같이 있으니 좋을 거라고 생각하이소.



그냥 넘어가라는 식이었다. 이미 끝났는데 뭘 어쩔 거냐는 식이다. 엄마는 장례비용 600만 원을 주고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장례 방식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엄마의 표정은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 유골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 묻는 고객에게 '나중에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요.'하지 않고 '그건 모르죠' 당당하게 얼굴에 물음표를 찍는 장례지도사의 얼굴이 징그러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개 공동유골함은 무연고 사망자나 객사한 사람,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2차 장지였다. 고인의 특별한 유언이 없고서는 그곳을 최종 장지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고. 공동유골함에 1년 동안 유골이 쌓인 후에야 그 무거운 뚜껑을 열고 유택동산이라고 불리는 뒷동산에 잔디장 형태로 뿌리는 것이다.


'저 작은 상자에 1년 동안 수백구의 유골을 모은 후에 한 번에 잔디장을 한다고?' 그것은 추모가 아니었다. 처리에 가까웠다.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갇혀 지낸 것이 내내 마음의 응어리 었던 엄마에게 두 번째 불덩어리가 날아와 꽂혔다. 엄마는 내년 1월까지 할아버지를 신원미상의 사람들과 공동유골함에 또 한 번 가두게 된 셈이었다.


유택동산 공동유골함에 유골을 넣은 후 1년 치를 모아 한꺼번에 잔디에 뿌리는 것. 그것은 자연장일까? 공동유골함 장례 방식을 두고, 아빠는 유골을 뿌리는 것이 맞다고 했고, 엄마는 유골을 버리는 것이라 했다.


엄마와 함께 유택동산으로 가 잔디장 구역을 찾았다. 1년 동안 유골 모은 후 뿌린다는 잔디는 가로 세로 1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엄마는 기함을 했다. 누가 봐도 1년 치 유골은 그곳에 다 뿌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주 일부는 뿌리고 대부분은 버리겠구나. 엄마는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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