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핑계 또는 어쩔 수 없는 이유

by 긍정스민

"오늘 많이 기다리셨나요?"

"선생님이세요?"

"이전에 어떤 직업을 하셨나요?"


첫 수업이 있던 날, 저에게 물어오는 질문이 앞뒤 정황 없이 바로 훅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궁금해서 물어온다는 느낌보다 이미 판단을 내린 상황에서 확인하려고 질문하는 거 같았습니다. 상관은 없었습니다.


"비슷하게 도착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전에 비행기 잠깐 탔었습니다."


하얀 양말이 깨끗하지 않다고 느낀 거,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전체적인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마에 반찬고 같은 무언가 붙어 있었던 거 제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모습이었으며, 수업 도중 아이의 활동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시는데, 사진에 필터가 너무 들어가서 선명한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새로 개원하면서 대표이사님은 요일마다 선생님을 배정하고, 경력이 오래인 선생님을 우선해서 시간대를 확보해주시는 거 같았습니다. 올해에 몇 군데 더 개원을 한 이유로 선생님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고, 아이 교육에 관심이 생기는 건 어느 엄마나 마찬가지 일테지만, 저에게도 몬테소리 자격증을 취득해서 일을 하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이면 되는데요."


일주일에 1-2번은 일할 수 있는 요일로 확보해 주신다는 말로 받아들여서 꽤 호감있게 봐주신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김칫국 마신 거였습니다.

"몬테소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니다."

취득을 위해서 일주일에 편한 날로 하루 이틀은 교육을 들어야 한다는 거였고 과정은 토들러와 차일드로 각각 100만원, 180만의 유료 수업이랍니다.


"어떠한 자격시험을 응시하면서 목표 점수를 내기 위해서 교재를 사고, 동영상을 듣는 등 공부하는 데 쏟는 돈은 부수적이라 하더라도 수업료가 100만원인 자격증이라니요."


수강료 개념으로 생각해야 하는건지, 자격증 취득까지 보장하는 하나의 패키지로 봐야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찌됐든 들어가는 비용 대비 나오는 수입이 크면 될테니, 구체적으로 한 달 급여에 대해서 여쭤봅니다. 요일수와 담당하는 아이들 인원수에 비례하는 것이라 대표이사님 혹은 추후 부임할 대표원장님이 어떤 선생님에게 학생을 배정하는지 잡아주는 것도 중요할 거 같았습니다. 제가 이 선생님을 추천받았듯이 말이죠.


"무엇보다 딸 아이에게 가장 좋아요."


엄마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는 말처럼, 출산으로 끝나는 게 아닌 출산으로부터 육아의 시작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아이의 발달과정에 대해 알아가야 하는 게 양육자의 몫이기도 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라나는 딸 아이에게 좋다는 게 맞는 말이었죠. 여차여차 딸 아이 수업 후 다음 시간에 오기로 되어 있는 아이가 못 오는 바람에 이러한 사담이 이어지기는 했습니다.


"저는 아이 돌 이후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었습니다. 교원에서 17년 정도 있었고, 퇴사하면서 몬테소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5년 넘은 거 같습니다."


곧 제 딸 아이가 돌이 다가오는 걸 아신건지, 육아 외에도 일을 하라고 은연중에 말씀을 하신 걸까요. 저는 아이 교육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집에서 5분 거리의 이 곳도 좋은 조건이기는 했지요. 다만, 조만간 둘째를 갖을 생각이라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2020.04.22일 수요일은 대표이사님이 추천한 선생님과의 첫 수업일이었습니다. 이후 한 번의 수업은 불참, 다음 한 번의 수업은 다른 선생님으로 대체, 그 다음 수업은 내일입니다.




"그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셨겠지만, 저는 부모님 또는 갑자기 병원에 가는 이유를 대는 사람들은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끝이 좋지 않았다기보다 이미 약속이 한 번 틀어진 것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그 시작이었겠죠. 제가 한국에 귀국 후 신랑이 하던 가게를 맡아할 때가 있었는데, 직원이나 아르바이트 뽑으면서 약속한 시간에 못 오는 사람들이 하는 이유나 막상 일을 시작해서 갑자기 그만둘 때 하는 이유는 손가락에 꼽았습니다. 물론 이유의 종류는 너무 다양했습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 노로 바이러스에 걸렸습니다."

"다리가 부러져서 당분간 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여행가셨다가 사고를 당하셨다고 해서 연락을 미처 못 드렸습니다."

"부모님이 아르바이트 하는 거 반대하십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아르바이트 하기로 해놓고, 뒤늦게 부모님 반대라는 이유를 말하거나, 병원가는 경우는 왜 그렇게 갑작스러운지요. 평소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 나오고, 깁스한 다리 사진까지 보내오며 당분간 병원생활 한다는 말에 일은 못한다 하더라도 학교 생활은 어떻게 가능하려나 우려스러웠지만, 요즘 사람들 소셜미디어 활동은 기본이라 여차여차 하다보니 분명 다리에 깁스 했다는데 멀쩡한 상태로 학교 생활하는 모습이 업데이트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성인이라 하기에 갓 고등학교 졸업한 대학생이 주로였기 때문에 솔직하게 하기 싫다는 이유보다 그럴듯한 면피로 보였었나 봅니다. 갑작스러운 이유로 그만두게 되면 일에 차질이 생기고, 인원을 다시 공고하는 등 신경쓰느냐 제 시간과 힘이 소진되었고, 그러면서 약속한 자리에 그러한 이유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놓은 거 같습니다.


정말로 그런 이유라면, 갑자기 아프거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 마음에서 불편한 무언가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일이 잘 안 풀리는 경험은 일상에서도 경험하는 것처럼, 마음에서 무언가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한 데 저는 그걸 부모님 관련 이유나 병원에 가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은연 중에 핑계라고 말이 먼저 나왔지만, 정말 아파서 못 왔을수도 있으니 이유라는 말로 정정하겠습니다.




하영이 돌 잔치에 광천 도련님 식구로 아이 2명 포함해서 총 4명 예약인원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빙빙 돌고 아파서 돌잔치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그 날 워낙 정신 없었기 때문에 깊게 생각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전 날 술 마시고 몸에 무리가 왔나보네."

신랑은 가볍게 넘기는 거 같아도 내심 서운한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한 주 뒤였습니다.

5월 9일 토요일 아침

불현듯 대청소의 기운이 옵니다.


"12시 도착한다는데?"

"갑자기 올라온다고요?"

"자고 갈수도 있어."


광천에서 3-4시간 걸려 올라와서 당일 내려가지 않을거라는 신랑의 추측이었지요. 도착시간이 정해진 이상, 더군다나 자고 갈지도 모르니 몸이 벌써 움직입니다. 누군가 구역을 맡아 하자고 결정한 게 아니었지만, 각자 좋아하는 구역이나 청소를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박멸주의자 신랑은 화장실과 주방 찌든 때 제거, 행렬주의자 저는 전반적인 정리정돈을 맡아합니다.


오후 1시 도착


"돌잔치 가려고 전날 파마하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빙빙 돌면서 아팠어요."

"이석증이었나봐요. 저도 20대 초반에 겪었는데, 3-4일 고생했었거든요."

부창부수, 도련님 말에 동서가 어시스트 합니다.


"3-4일간 구역질 나고, 황금 휴가기간에 집에만 있어서 억울했었네요."

저는 이석증을 겪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3-4일간 음식 잘못 먹어서 구토하고 속 울렁거려서 의욕하나 없이 몸이 고생하던 때는 떠오르니 어떤 심정이였을지 이해가 되더군요. 못 오게 된 미안한 마음이 있었으니 이렇게 한 주 늦게나마나 적지 않은 거리를 달려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일은 몬테소리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새로운 선생님은 월요일날 수업하는데, 결정하는대로 요일과 시간을 말해주세요."


대표이사님은 저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처럼 수요일에 간다는 건, 이전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든가, 광천 도련님의 방문을 계기로 선생님의 상황에 조금 더 이해심이 생긴 건 아닙니다. 요일별 일정이 있어서 수요일날은 몬테소리 가는 날로 정한 이유가 큰데, 내일은 어떤 날이 될까요.


원래 이런 경우가 없었다는 대표이사님 말씀처럼 돌발적인 응급실행이었을지, 제 경험상 끝이 좋지 않을 거라는 예를 더하는 일일지요. 자연스럽게 흐르는 게 순리인 것처럼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한쪽에서 변화가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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