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미리 아니었어요?
오늘 글을 여러 편 적게 된 데에는 그간 올리지 않은 소재가 터져나온 이유도 있겠지만, 어제까지 어떻게 될까 싶던 결말이 오늘 아침 마침표를 찍게 된 소소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고 향수를 쓸 일이 적어져 갖고 있는 향수를 저렴하게 올려뒀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상품이라해도 시중 판매가 30미리 기준 8-9만원 대비하면 그 가격으로 내놓을 수 없지만, 기호상품은 수요가 적은 듯 보였고 자연히 가격에 반영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직거래를 고수했었습니다. 택배를 보내는 절차가 막연히 번거롭다 느껴졌으니까요. 그래서 초반에 택배문의 들어온 건 거절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느낀 건,
가격 메리트가 있으면 거래가 빨리 이뤄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이왕 내놓은 물건이니 누군가 제가 올려둔 물건을 원하면 가능하면 물건을 넘기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고 소진의 개념이었죠. 그래서 상대방이 착불로 택배를 원하면,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느낀 건,
직거래도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 소모가 들지만 택배거래는 착불로 보낸다 하더라도 직거래처럼 물건채로 보낼 수가 없기 때문에 포장하고 상자에 담아 발송하는 것까지 시간 외 비용이 더 든다는 거였죠. 오히려 직거래가 깔끔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 시행착오를 겪던 중,
향수는 가격대비 저렴한데 왜 안 사는지 의구심이 들던 차였습니다. 가격을 조금 더 낮추자 문의가 들어왔고, 택배를 원하네요. 합리적인 가격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어차피 저는 향수를 쓸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이왕이면 잘 사용해줄 사람한테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택배 발송전문인도 아니고, 뽁뽁이나 각종 크기의 상자가 집에 있는 게 아니다보니 우체국에서 뽁뽁이 가져오고,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최소 상자 규격도 그 향수가 들어가기에는 공간이 많이 남아서 간단하게 포장상자를 만들다보니 이게 뭐하는 건가 싶더군요.
보통 상대방이 선입금하면 후발송하는데, 이 사람은 송장번호 보내면 입금하겠다하고, 소량건이라 반값택배로 보내려고 하니 선불만 선택이 되고, 어찌됐든 알리고 계좌이체로 받으면 되는 거긴 했지만 무엇보다 저희 집 앞은 gs편의점인데 받는 사람은 미니스톱을 원하네요.
지금껏 향수 가격, 선발송 후입금, 반값 택배 등 수취인에게 유리하게 맞춰줬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당에 미니스톱까지 가서 보내는 건 아닌 거 같아서 gs 편의점에서 반값 택배로 발송했습니다.
제 선에서는 최선이었습니다. 그간 거래를 하면서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이번에 조금 많이 들었지만, 이왕 보내기로 한 거였으니 좋은 마음으로 보내야 그게 좋은 거 같더라고요.
30미리라 하지 않았나요?
어제 연락이 왔습니다.
불현듯 다시 확인하니 7미리였네요?
이거 어쩌죠.
집에 있는게 50미리, 60미리이다보니 향수 용량에 대한 개념이 없어진 저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향수의 사이즈가 몇 미리인지 향수 바닥면 투명 라벨에 붙어 있었지만 워낙 글씨도 작게 적혀 있는데다 눈에 뜨이는 글씨색이 아니어서 제대로 확인이 안 되었고, 더욱이 해당 향수 이미지와 가격을 첨부하면서 그 사진에 있는 향수의 크기나 비율이 제가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30미리라 확신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물론 수취인도 향수 문의할 때, 실제가 작아보인다는 의문을 품지도 않았었죠.
제가 사기치려고 한 행동도 아니고, 용량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는데, 상대방은 불쾌했는지 반품을 원했습니다. 수고스럽게 보내고 결국 이렇게 되나 싶으니 환장하겠네요. 그러다 최근에 배운 화법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제가 제안해도 될까요?
어차피 택배 착불로 보내고 할 바에는 1만원에 사용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생각해보시고 알려주세요.
30미리 8-9만원일 때, 미니어처 7미리는 시중가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보통 패키지 상품으로 로션 등 다른 상품과 같이 판매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계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근거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해당 용량을 1/n로 계산해보자면 2만원 내외이지 않을까 싶었고, 중고거래 특성상 5천원 내외 차감한 금액으로 올리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결국 정확한 용량을 알았으면 1.5만 내외에 올릴 향수였으니, 제가 실수한 부분 감안해서 이왕이면 가격을 낮춰서 쓰는 게 나을 거 같았죠.
죄송하다며 반품을 원하네요?
이미 상품 열어봤을 때 수취인은 장난하는 거 같고 다 싫은 거겠죠. 감정이 상해서 다 물리고 싶겠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브랜드 향수이니 그 구매한 가격이 터무니없는 건 아닌데다 판매자가 실수 인정해서 반품 등 부대비용을 차감하는 조건으로 가격을 더 낮춘다면, 감정 누르고 상황을 받아들여도 좋을 거 같지 않나요?
수취인은 다시 테이프 두르고, 주변 편의점 들려서, 착불로 발송하고,
저는 편의점에 물건 찾으러가고, 이미 내놓은 상품이니 가격 반영해서 다시 거래하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 이미 질리는 상황이었죠.
주소 보내주세요.
오후 늦게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발신인 주소를 모두 작성했는데, 수취인에게 보이는 정보는 아니었나봅니다.
못 팔 물건 판것도 아닌데 생각지도 않게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거 같아 답답하기도 하고, 구구절절 문자로 보내느니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됐든 그 날은 늦었으니 다음날 통화해서 푸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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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바꿔 제가 이런 상황이었으면?
저도 반품합니다.
판매자의 의도성을 떠나 이미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 그 물건을 좋은 마음으로 쓸 수가 없겠죠. 그 심정을 알면서도 저는 연락처를 남겨달라는 말을 남겨두었습니다. 상대방은 그런 거 필요없으니 반품할 주소나 달라고 할 수도 있었죠.
가만 생각해보니 이미 틀어진 거래에 대해 굳이 애써야 하는가 싶더군요. 살아가면서 어찌됐든 어긋나 버린 관계나 상황이 있을텐데 굳이 애써가면서 저의 말을 덧붙인다는 게 말이죠.
비대면이긴 했으니 그 사람 뜻대로 깔끔하게 원점으로 돌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굳이 애쓰지 않는 게 나을 거 같더군요.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보니 제가 어떤 결정을 해도 아쉬울 건 없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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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8시
연락처가 적혀 있었습니다.
전날 늦게 잠들다보니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는데 아침 9시가 되어 메세지를 확인하니 이번에는 오히려 제가 망설여지더군요.
얼마 있지 않아 연락했습니다. 정황 얘기하며 풀어나가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결론은 그렇게 되었고 마지막 착불 택배비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더군요.
원래는 반품했어야 하는 거니 제가 택배비 부담을 하라네요?
직거래였으면 현장에서 바로 수정했을 거였고, 수취인 원하는대로 맞춰줬더니 판매자가 무슨 봉이라도 되는가 봅니다?
다 감안해서 내린 가격이었는데 거기서 더 내릴 생각을 하네요. 그냥 달라고 안한게 다행인가요?
어느 하나도 손해보지 않는 사람, 그 인색한 태도에 얼른 통화를 일단락 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은 부메랑이요, 본인이 하는대로 나중에 돌려받는다고 생각하니 제가 연연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통화종료 후 입금하고 끝났습니다.
물건의 가치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겠지만 객관적 가치로 최악의 물건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과정이 중고거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제 물건을 비워내기까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까지 중고거래는 필요악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