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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스민 Jun 06. 2021

<N극과 S극 사이, 글을 쓴다는 건>

#2 운수 좋은 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책상에 앉아 나의 글을 적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첫째는 안아서 키워서 그런지 원래 아이들이 그런건지 첫째 잘때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 아이가 잘 때까지 인간 죽부인이나 다름없는, 그렇게 있다가 잠드는 적도 많다.

둘째가 태어나서는 한동안 몸이 힘들었다. 둘째도 관심이 덜 쏟아지는 걸 느끼는지 유독 칭얼거림이 느껴지는 거 같다. 아무래도 첫째 하나만을 키울 때 아이에게 쏟는 수고가 둘째에게도 갈 수는 없는 거 같다. 그만큼 첫째가 큰 이유이기도 하고, 엄마가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이유이겠지.


아이들 낮잠 자는 시간은 있고, 육아가 수월하다고 느끼는 날조차 책상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생각 못 해본 거 같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느끼기 전에 집안일을 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28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3달

길다면 길수도 짧을 수도 있다.

정해진 기간이든 그 이후든 꾸준히 글을 남겨야겠다.

그 습관을 다시 들이고 싶다.

글 쓰는 요일을 정해야 하나.


시작은 6월 1일 화요일이라 매주 글을 쓴다면 다가오는 화요일을 마감일처럼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비교적 손을 덜 수 있는 주말에 글 쓰는 여유를 갖아야겠다.


마침 신랑이 둘째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다행이다. 독박육아라는 말처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날들이었는데, 주말에 일보러 나갈 때도 신랑이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건 나조차도, 신랑도 하지 못한 거 같다. 육아는 나의 몫이라 느낄 때는 책임감이 막중해지는 거 같아 잘 해봐야지 싶다가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처럼, 내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는 날이면 그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첫째한테는 화를 내거나 목소리 높이거나 내 성격을 다 보일 일이 적었는데,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그게 마음대로 안된다.


이번 주는 지금껏 결혼생활 중 고비였던 거 같다. 둘째 백일 때 양가부모님 모시고 가볍게 식사하자 했고, 코로나로 여럿이 식사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집에서 하는가 싶었다. 내가 아는 신랑은 없으면 사는 편이다. 시댁식구가 해산물 같이 먹겠다며 집에 들린 날, 집으로 돌아가 식기구가 없다고 했는지 그 날로 식기구를 사오던 사람이다.


손님 들일 일이 얼마나 있다고 이걸 세트로 사왔어.


나의 반응은 그랬지만, 막상 이사를 하고 손님 들일 일이 생기다보니 이래저래 유용하게 쓰일 때도 오더라.


집에는 큰 상이 하나있는데, 양가 가족이니 2상은 있어야겠고 부족한 상과 식기는 사지 않을까 싶었다. 고기 구워 먹을 거 사 오는건 아이가 둘이다보니 보통 신랑이 전담해서 사오고는 했다. 결론은 나는 하는 게 없다는 거지만, 신랑은 사람들과 맛있는 거 같이 먹고 대접하는 걸 좋아해서 크게 우려는 하지 않았다.


아이 백일상은 일요일이었는데, 친정 부모님이 하루 전날 미리 올라오신다 했다. 우리네가 이사하고 처음 올라오시는 길이기도 해서 백일상은 백일상이고, 늘 손님을 초대하며 식사했듯 부모님이 도착한 저녁은 그렇게 뭐라도 먹을 줄 알았다.


3시 넘어 내가 친정 부모님을 픽업해서 돌아온다. 그 날 주문한 생화가 도착해서 다듬는 동안 신랑은 잠시 나갔다 온다 했다.


식용유 하나 사오면 되지?


말은 그래도 알아서 장 봐오겠지 싶었는데

손에 달랑 식용유 하나 사 들고 들어온다.


다시 나가서 사오려나보지.


싶었는데 신랑은 저녁을 먹을 생각도 준비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하물며 지난 주 신랑 친구들이 다녀갔을 때의 1/10의 노력이라도 보였어도 서운했겠지만, 이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안 먹냐 물으니

시켜 먹으면 된다 했던가.


내 친구가 우리집 놀러왔던 날,

이건 집들이인지 진짜 가볍게 놀러오는 건지 헷갈렸다.

친구 신랑도 같이 온다하고, 평일이 아닌 주말이다보니 졸지에 부부내외가 보는 자리가 됐으니 말이다.  


그 와중 신랑 스스로 제일 연장자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 기를 세워주고 싶었는지,

한우, 관자, 회, 소바 등 한가득 장을 보고 온 적이 있다.

신랑 친구네 집들이 갔을 때, 배달 음식 시키는 걸 보며 이건 아니라 생각했었는지,

정작 오는 사람은 가볍게 왔는데

준비한 우리는 집들이 수준이었다.


그랬던 신랑

신랑 친구네가 하루 자고 갈 수 있다 하니 새 이불도 사와 세탁기며 건조기에 돌리더니

이번에는 그 어떤 노력을 볼 수가 없었다.


진짜 살면서 이런 배신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늘 기대를 채우고 때로는 기대이상을 보여줄 때가 있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고,

이런 풋대접도 없다 생각이 드니 꼴도 보기 싫어졌다.


친정 부모님 계셨지만, 그런 걸 가릴 정도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느낀 건 신랑의 일관성 없는 말과 행동에서 오는 배신감이었다.


다음 날 백일상이 있었다지만,

친정부모님이 이사 후 처음 찾으신 건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말을 해서 왜 그랬는지 풀어봐


남동생은 말하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건 이해를 할 영역이 아닌 거 같다.

뇌로 이해하기 이전에 마음이 이미 상했다고 하는게 맞을 거 같다.


그 뒤로 골이 더 깊어지기는 했다.


권태기라는 말이 오기도 전에 이혼을 생각해야 하나 싶었다.


이어지는 신랑의 잔소리에 그 뒤로 몇 번 대폭발이 있었고

꼴도 보기 싫어 친정에 피신을 갈까 생각했었다.

친정엄마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적극적으로 유도한 이유도 있었다.


어찌됐든 떨어져봐야 소중한 걸 알게 해줄 생각도 없지만,

지금은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하던 차

수트케이스를 꺼내려다 그 앞에 서 있던 옷걸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몸통을 잡고 세웠어야 하는데, 옷걸이의 가지를 잡으니



두 동강이 되었다.


이래저래 손만 되면 남아나지 않는구나

비도 내리던 그 날

마음 가는 대로 하지 말라는 건가

평소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 탓인데

하필 옷걸이까지 부러진데다

집 비우기 전에 집안정리며 청소는 해두고 가야 할텐데

아이들 짐과 내 짐도 싸야 하고

바삐 움직인다해도 눈 앞에 내 손이 닿아야 하는 것들이 보이니

그냥 숨이 막히기도 한다.


엄마한테 상황보고는 이어지고,

오늘은 금요일이니 마음 진정하고

그래도 안되면 주말이라도 내려오라며

오늘만 날이 아님을 얘기하신다.


그렇게 피신보다는 집안을 다시 둘러보니

밥솥에 말라 비틀어진 밥이 있다.


평소 밥을 제 때에 먹지 않다보니

밥솥을 열릴도 많지 않았고

전 날 저녁에도 이런 상태였을까 싶었다.


일전에 신랑이 일하고 들어와 내가 삼겹살을 구워줬던 날,

잔열에 따뜻하게 먹으라고 인덕션에 구워 내놓으니

환풍기가 안 돌아가는 곳에 고기 구워 뒀다며 잔소리

언제 밥 준비해달라 했냐며 알아서 먹을테니 칭얼거리는 둘째보라며 잔소리


지긋지긋한 잔소리에

이번에는 저녁을 차려줄 생각도 안 했었는데

밥이 없었어도 짜증났겠지만,

다 말라 비틀어진 밥은 한숨에 가까운 거 같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집안 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다시 마음을 잡고 저녁을 준비했다.


그 날 저녁은 밖에서 먹고 왔다며 신랑이 선수쳐서 퇴짜를 맞았지만,

그 다음날은 평소의 1/7은 돌아온 거 같았다.

물론 겉으로 보이기에


벌써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오늘,


우리네 가정에 환기할 무언가 필요한지

신랑이 1박 2일 에버랜드 숙박권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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