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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스민 Jul 04. 2021

<N극과 S극 사이, 글을 쓴다는 건>

#5 비혼주의 결혼하다

파도는 점점 자연스럽게 치고 있다. 


월요일인가 퇴근 후 신랑은 장을 한 껏 보고 온다. 

먹는 거에 후한 신랑, 연인일 때도 그는 그랬다. 


이 사람을 만나면 뭘 먹든 잘 사주는 구나.

특별한 날에 선물을 따로 하지는 않지만, 

평소 틈틈히 먹는 거나 데이트하는 비용은 아끼지 않았다. 


한번은 설문조사에 당신의 월 평균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체크하는 란이 있었는데 내가 아는 금액보다 2배는 되는 란에  표시하는 걸 보고 아무리 뒷조사 없는 설문이라지만 무슨 자신감인가 싶기도 했던 거 같다. 


나는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쓰는 편인데, 다른 사람은 일단 쓰고 메꿀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연애할 때는 남자친구에 대한 좋은 단편적인 내용들을 짜맞추며 바라보기 때문에, 씀씀이가 있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젊을 때 열심히 벌어 둔 돈이 있나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게 그 사람한테 끌린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한 몫을 하긴 했던 거 같다. 


열심히 살았나보다. 


다시 한 번 적어내면서도 웃음이 난다. 


#비혼주의 

나는 비혼주의였다. 당시 이런 단어가 있지는 않았지만, 결혼해서 사는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어서 결혼은 하지 않겠다라는 주의였다. 주변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내 삶만 바라보며 살고 싶은 결혼이라는 건 선택이라지만 내 인생 선상에는 생각해보지 않은 키워드였다. 


엄마 아빠는 늘 같은 걸로 싸우는 거 같았다. 목소리 높여 싸운다는 게 건설적인 대화의 형태는 아니지만, 서로 침묵하는 것보다는 소통을 바라는 이유라 생각하면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 덜 부딪히기 위해 노력해야 할텐데 아이러니하게 시간이 지나도 데시벨 크기를 키우기만 할 뿐 불협화음을 줄이는데 기여한 건 없었다. 


왜 매일 같은 걸로 싸우실까. 


아빠는 술을 드셔야 레파토리가 시작되었다.

내 생일에 졸업식에 손편지 써주시고, 퇴근할 때면 손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오시는 다정다감한 아빠지만, 술을 마신 뒤 아빠는 전혀 딸의 말이 통하지 않는 남이 되는 거 같았다. 


테이프에 녹음을 해볼까?


지금은 테이프, CD 생소해졌지만, 그 때는 녹음 녹화하던 시절이니, 반복되는 그 말들을 테이프에 담아서 들려드리면 스스로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시지 않을까. 


엄마, 우리 때문에 이혼 못한다고 하시는데 이렇게 살 바에는 이혼하시는 게 낫겠어요.


고등학생 때 그런 말을 한 거 같다. 행복하지 않은 매일을 같이 살아간다는 게 나에게는 힘들었다. 


시집 장가갈 때 모양새가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이혼부모의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을 늘 염두한 엄마였고, 그런 엄마의 신념 때문인지 나와 남동생은 그 모양새 갖추며 둘 다 결혼을 하기는 했다. 


내가 결혼할 줄이야.

그 전에 한국에서 살기 싫어서 외국으로 떠난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줄이야. 


#출국

#takeoff

2010년 5월 29일

이런 날짜는 잊혀지지가 않나보다.


비상구 앞 줄, 

승무원 앉는 자리를 등진, 

창가쪽에 앉은 나는 카타르로 날아가는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외국항공사이다보니 주변에 외국인과 결혼하는 한국인 승무원은 꽤 있었다. 결혼해서 싱가포르, 파리, 미국으로 건너가 사는 경우도 있었고, 카타르에 남아 있는 언니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듣도 보지 못한 카타르, 도하라는 땅이지만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온 사람들은 외국에 대한 동경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겠지. 


물론 나는 외국에 대한 동경 보다는 한국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제일 컸다. 작게는 다투는 부모님 집에서 벗어나고 싶고, 부모님 세대는 형제 자매가 많았으니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고, 가족간 화목하지 않은 이야기로 진저리가 나니 그런 이야기가 없는 한국이 아닌 곳이면 좋았던 거 같다. 

그렇게 비행하며 휴가로 한국에 온 날이었나.

어린 시절 옆 집에 살던 친구네 아버님이 관상, 철학, 사주 이런데 관심이 있으셨는데 

명동에 사주카페를 오픈하셨다는 말에 겸사겸사 가 보게 되었다. 


#역마살

2002년 대학교에 입학하고 

2003년 교환학생 대기후보 5번에 있던 나에게 독일 뷔르츠부르크에 갈 거냐며 전화가 온다. 

그렇게 2004년 첫 발을 내딛게 되었고, 집안 여유가 있거나 뜻이 있는 친구들은 자비로도 오는 독일이였지만 나는 이러한 명분없이 갈 집안 여력이 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내 대기순번까지 올 거 같지 않았다. 


누구라도 간다고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외국항공사 승무원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건 그 때이긴 했다. 

역마살은 그 당시 이미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던 지라 새로운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았다.  


#금

사주에 금이 많아서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현재 신랑)가 그 금을 필요로 해.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지만, 

그 결정을 내릴 때까지 옆에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필요로한다?

생각도 안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한다?

그 말이 쉽게 들리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 말 때문인지, 

아무리 결혼할 생각없어 외국으로 나가 살아있는다 한 들, 다시 한국에 들어올 운명이었는지 


2012년 5월 27일 결혼식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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