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감각 제로ㅣ시차 적응
비행지 기준으로 시간이 가다보니 요일과 날짜에 무뎌진다. 비행지에 도착해서는 그 현지시간에 따라 몸이 움직이니 바이오 사이클(bio cycle)은 생소한 단어며 ㅋㅋㅋ 도착지가 새벽이면 내 몸도 새벽시간인 것이다. 다만 비행 후에도 다시금 활력이 솟는 건, 불과 몇시간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다는 것과 그 공간에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면서 오는 신선함 그 이유이겠지?
승무원이 되고 생각지도 못한 힘든 점은 바로 하늘 시계를 어디로 맞춰야 하는지이다. 베이스를 두고 있는 곳과의 시차는 물론 때로는 로밍되지 않은 시간 계산에 헷갈리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episode #1
비행준비하는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커피 한잔 마셔서 그런가?'
'오프 다음의 비행이라 신나는 건가?'
도하에서의 오프는 말 그대로 휴식, 쏟아지는 건 잠 뿐이지만 충전이 되면 비행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가? 특히 이번은 한국비행이라 더 설레이는지도 모른다. 총 12명의 크루 중 5명이 한국크루와 함께 하는 인천비행, 얼른 가고 싶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버스 타러 내려간다.
'이상하다?'
다시 숙소로 올라온다.
픽업시간이 22시인데, 20시에 내려가 있던 나
22시를 20시로 단순계산이 안 되었거나 인천 비행이라 2시간 앞당겨 있는 출발하고 있던 나 ㅋㅋㅋ
나는 제대로 시차적응 중인가.
episode #2
3일의 스탠바이 중 이틀이 런던으로 바뀌어 있다. LGW 런던게이트윅, 19시간 체류이다. 오후 4시쯤 호텔에 도착하니 조금씩 비가 내린다.
'게이트윅이라는 위치가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네.'
나가려하면 정보도 필요한데다 체류시간이 여유치 않기는 하다. 다만 방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영국과 도하는 3시간 차이가 나니 미리 알람을 맞춰두고 이내 잠이 든다. 도하시간으로 새벽 3시 45분 알람이 울린다.
'레이오버 너무 짧다!'
그래도 도하로 가야 하니 준비하러 거울을 들여다본다.
'너는 누구니?' ㅋㅋㅋ
메이크업도 고스란히 눈 아래로는 눈화장이 번져있다. 피곤함에 그대로 잠든 내 모습이 안쓰럽다. 렌즈끼고 잔 눈은 뻑뻑하다. ㅋㅋㅋ 휴 주저할 시간은 없다. 세안하고, 새로이 메이크업을 한다. 머리망으로 머리 정리하고 유니폼을 입는다.
'빠뜨리고 가는 건 없겠지?'
방 어디라도 놓고 가는 건 없는지 확인 후 방을 나온다.
픽업시간보다 10분 전에 내려오면 적어도 한 두명의 크루들이 보이는데, 오늘따라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일 먼저 내려왔나보다.'
프론트에 체크아웃 하는데 직원이 당황한다.
"런던은 도하보다 3시간 느린데, 3시간 일찍 내려온 거 같아요?"
"그래요? 그럼 몇 시간 더 남은거죠?"
"6시간 더 남아있네요. 그 때 다시 오세요."
6시간 ㅋㅋㅋ 허탈하다. 그래도 시간을 잘못 계산하더라도 일찍 허탕친 게 다행이지.
나를 위로 하는 건 긍정의 말이어야 한다. ㅋㅋㅋ
크루들 다 떠난 뒤 허탕친 거라면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이 무시무시해지니ㅋㅋㅋ 남은 6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넷북을 켜두고 잠든터라 배터리가 부족하다. ㅋㅋㅋ
"바로 잠이 안오는데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어요. 어댑터 여분 생기는 대로 보내주세요."
"추가로 없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오지만, 인터넷 연결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맴돈다.
'방법을 찾아보자.'
어떻게든 눈을 뜨고 찾아보니 화장실에 shaves only 콘센트가 보인다. 얼핏 보이기에 내가 갖고 있는 콘센트 모양이 맞게 생겨서, 콘센트를 연결해본다.
컴퓨터가 켜진다!
'안 되라는 법은 없구나.'
기분 좋아지는데, 배터리 부족이라는 메세지가 계속 보인다. ㅋㅋㅋ 1분 남았다고 알려주더니 결국, 1분이 조금 넘게 켜져 있다가 스르르 꺼지고 만다. (왜 ㅋㅋㅋ)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나, 밖은 새벽이라 어두운데, 6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눈 앞에 없으니 외딴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이다. 눈물날 거 같다. ㅋㅋㅋ 분명 콘센트 모양이 같은데 왜 안되는 것이지.
"화장실에 콘센트 연결하는 곳이 있던데요."
"전압이 낮아서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ㅋㅋㅋ
오지 않을 거 같은 6시간도 지나가고, 예정대로 알람전화도 울린다.
나는 시차적응 중이다.ㅋㅋㅋ
episode #3
마닐라 비행은 28시간의 체류가 보통인데 35시간의 체류시간을 받은 크루 한 명도 같이간다. 한국 분인데 가운데 이름만 쓰자면 나와 같은 Jeong이다.
"Jeong, 완전 럭키 걸(lucky girl)이네."
체류가 더 길다는 이유만으로 크루들이 부러워 난리다.
"너가 내일 우리랑 같이 오는 거지?" 사무장이 나에게 묻는다.
"아니."
도하 시간 기준으로 내일이 아닌 모레 오는 거니까 나의 대답은 아니다.
"네가 럭키걸이야?"
"나 아닌데."
"그럼 너 우리랑 같이 돌아오는거네."
영문을 모르겠는 나, 사무장은 마닐라 시간 기준으로 내일이라 나에게 묻고 있었던 거다. ㅋㅋㅋ 그녀는 이미 마닐라 시간으로 하루 먼저 가고 있고, 나는 마닐라보다 5시간 느린 도하시간으로 확인하니 ㅋㅋㅋ 이야말로 동상이몽의 상황 아닌가.
시차적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