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찍 준비한 비행
집에 앉아 화장을 다 한 상태로 컴퓨터를 하고 있다.
"방금 비행에서 돌아온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비행도 없는 이 날에 나는 왜 화장을 하고 있는가?"
참고로 자문자답하고 있다.
전날 다시 말해 오늘 이른 오전, 자정을 넘어가니 오늘이다. 비행에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숙소로 들어오면서 다음 비행의 픽업시간을 확인한다.
'바뀐 비행이라 반영이 안 된건가?'
원래는 리야드(RUH) 비행, 한 크루가 이유를 굳이 적지 않고 자신의 알렉산드리아(HBE) 비행이랑 바꾸기 원한다.
'어차피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거 어떤 비행이든 상관있으랴.'
비행 바꾸는데 수락한다.
이미 시스템 상에는 바뀐 스케줄이 들어와 있지만, 픽업시간에는 내 이름이랑 시간은 없다. 각자마다 정해진 시간 외에 이 숙소를 지나가는 버스 시간대도 따로 적혀 있으니, 대략적인 시간을 맞춰 몇 개의 픽업시간을 적어간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몸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 일단 눈 뜨면 그 시간이 언제이든 나에게는 아침이 된다. ㅋㅋㅋ
물을 끓이러 간다. 라면이다.
비행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니 유니폼 입고 화장하는 정도여서 체류지로 떠나는 준비보다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되어 수월하다.
'이 참에 빨래나 돌릴까?'
세탁기 한 번 돌리면 30분이면 끝나는데 그 시작 버튼을 누르기가 3미터 같다. 방짝들 다 있는데 빨래까지 돌려주는ㅋㅋㅋ 혹시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울릴까 싶어 주방 문은 닫아둔다.
시간은 되어 크루버스에 올라탄다.
"너 스탠바이 불린거니?" 유럽권 아이가 물어본다.
"아니, 나 미리 스케줄 바뀌어 있는데 픽업시간에는 내 이름이 없었어."
"지금 시간대에 가는 크루가 한 명도 없었는데 너가 같이 스탠바이 불린 건지 물어봤어."
"그렇구나. 넌 어디가니?"
"나 제다 불렸어."
그녀와 나는 같은 버스에 오르고 움직이면서 잠시 다이어리를 확인해본다. 다이어리에 스케줄을 밀려 쓴건지 날짜와 시간이 맞지 않으니 요일이 헷갈린다.
"그런데 오늘 금요일이야? 토요일이야?"
"잠시만, 오늘 금요일."
도착하자마자 아이디 카드를 스왑(swap)하니 메세지가 뜬다. 해당 비행이 없다고 나온다. ㅋㅋㅋ
'분명 시간 맞는데?'
스케줄을 다시 확인하니, 그 모든 상황이 이해된다.
1. 내가 실제로 받은 스케줄
6일 DOH 도착 0005
7일 DOH - HBE 1335 - 1635
6일 자정을 넘어 도착해서 그 날 하루를 쉬고, 7일에 턴 비행이 있다.
2. 내가 착각한 비행일정
5일 DOH 도착 2350
6일
7일 DOH - HBE 1335 - 1635
6일 자정 넘어 도착인데 10분 빨리 5일 자정 전에 도착한 것이다. 여차여차 비행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온다해도 6일이 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6일 하루 전체를 쉬고, 7일 비행을 준비하면 되는 거였다. 다만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하루 지난 거라는 착각에 다음날 오후 비행을 전날 준비한 것이었다. ㅋㅋㅋ
입사하고 막 비행 시작할 때에는 날짜며 요일이 헷갈려서 픽업시간 잘못 아는 경우도 생기기도 하지만 스케줄 헷갈린 건 2년 만이다. ㅋㅋㅋ 다만 재미난 건, 픽업시간에 내 이름이 없고, 다이어리 요일이 다르고, 해당 비행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까지 무언가 아니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받는데도 불구하고ㅋㅋㅋ 굳이 없는 픽업시간 맞춰 준비하고, 다이어리 날짜가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비행시간은 분명히 지금이라며 나름 일관성있게 '하루 일찍' 비행 준비하고 시간맞춰 간 것이라는 거다. 다시금 발길을 돌리면서 헛 웃음이 나온다.
'어쩐지 오늘따라 여유가 있더라.'
잠으로 채울 수 있는 시간에 일찍 깨서 움직인거라 생각하련다. 유자차 한 잔 마시며 카페에서 시간보낸다 생각하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