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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팥쥐아재 May 02. 2023

어쩜 형아들이랑 똑같니!

개구쟁이 삼형제


아이들에게 잠시 놀고 있으라고 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도중에 아내님이 커피를 내려줘 함께 마시며 이야기도 나눴다. 거실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들 웃음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순간 불안함(?)을 느끼고 아내님과 함께 나가 보았다. 아... 이런... 거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고 첫째와 둘째는 미끄러운 바닥을 자동차와 함께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셋째는 의자를 가져와 싱크대 앞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는 컵에 물을 받아 바닥에 뿌리고 있었다. 황당해하는 우릴 보고는 환하게 웃어 보인다. 화를 내려다 아이 웃음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이 모습조차 우리들에게 행복한 추억거리로 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둘째의 만행이 떠올랐다. 아내님과 미술놀이를 한 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물을 쏟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비 오는 날'을 표현했다고 한다. 매번 비가 올 때면 아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데 감기에 걸릴까 염려돼서 혹은 옷을 버릴까 걱정돼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대신 아이는 집에서 그런 환경을 만들었고 물웅덩이에 참방 뛰었다. 어차피 집안이라 체온이 떨어질 리도 없고 옷을 버려도 금방 빨아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이날도 아이를 혼내는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참 다행이다. 지나고 보면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소중한 추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건의 주범인 셋째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싱글벌글이다. 왜 그랬냐고 물어봤자 "비! 차!"라는 말 밖에 못하는 아이와 대화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하릴없이 방으로 가 수건을 찾았다. 왜 이 날따라 수건은 다 세탁기에 들어가 있는지! 임시방편으로 손수건 3장을 꺼내 물기를 닦아냈다.  거실을 닦느라 분주한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미처 물기를 닦지 못한 곳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놀기 바쁘다. 순간 아이들 놀이공간을 방해하는 내가 악당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에는 정말 못 당하겠다.


첫째도 분명 셋째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사고뭉치 둘째도 이제는 제법 형아티를 내는 게 더 이상 손을 타지 않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성장하고 이 순간은 찰나와 같이 지나간다. 아이들이 얼른 자라서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빨리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쉬움이 남는다. 천천히 자라면서 오랫동안 순수함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으면 한다. 비록 아이들의 지나친 순수함에 순간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회초리 대신 카메라를 들 줄 아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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