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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팥쥐아재 Jan 08. 2025

헌혈 맛보기

시간과 건강 나누기


어제저녁 아내님께서 헌혈 예약이 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매번 아내님과 함께 헌혈하기 때문에 급하게 예약을 했다. 다행히 아내님이 예약한 시간 30분 전에 자리가 있어서 '혈소판 혈장' 헌혈로 예약할 수 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가 방학이었다. 평소 같으면 둘은 집에 두고 다녀왔겠지만, 최근 첫째에게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그 일 때문에 첫째는 아내님 감시 하에 움직임이 제한되어 버리고 말았다. 스마트폰도 압수당하고... 불쌍한 녀석... 내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아내님의 단호한 결의에 이견을 제시할 용기가 나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기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결국 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헌혈의 집에 함께 가기로 했다. 헌혈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약간의 시간과 건강을 나누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 같았다. 아이들도 함께 가는 걸 흔쾌히 허락해서 헌혈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각자 읽을 책을 2권씩 챙기기도 했다.


헌혈의 집에 도착해서 전자문진을 하는 동안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발견했다. 아이들도 곧 선생님을 인지하고 눈이 마주치자 밝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도 밝게 화답한 다음 아이들에게 초코파이를 먹을 건지 물어보셨다. 아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렁차게 대답했고 선생님의 칭찬과 함께 한 손에는 초코파이를 다른 한 손에는 음료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 어딜 가나 인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첫째는 초코파이를 받자마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고(인정 없는 녀석!) 둘째는 나에게 한 입 먹으라고 초코파이를 내밀었다(다정한 녀석!). 


아내님은 철분 수치가 부족해 헌혈을 하지 못했다. 응?!! 반면 나는 1시간 반 동안 편하게 누워 책을 읽으면서 헌혈했다. 다행히 피는 잘 나왔으나 혈소판혈장은 워낙 시간이 많이 걸리는 헌혈이라 약간 팔이 저렸을 뿐이다. 헌혈하는 동안 둘째는 내가 걱정된 건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인지 내 주위를 기웃거렸다. 아이를 옆으로 불러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바늘을 통해 들어간 피는 기계를 통해 혈소판과 혈장으로 분리해서 팩에 저장하고 나머지 적혈구는 다른 용액과 함께 다시 몸으로 돌아온다, 방금 몸에서 빠져나온 혈소판은 따뜻하다고 만져 보라고 하니 혈액팩 위로 조심스레 손을 올려 보았다. 정말 따뜻하다며 신기해했다. 이런 게 뽑은 혈액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아이가 이해했으면 좋겠다. 반면 첫째는 내가 헌혈을 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었다(다시 한번 인정 없는 녀석!).


헌혈을 마치고 쉬는 동안 받은 과자를 나눠 먹었다. 선물 받은 영화+팝콘 쿠폰과 편의점 쿠폰, 그리고 작년에 헌혈을 많이 했다며 받은 치킨 할인권과 비타민을 보고 둘째가 눈독을 들였다. 오늘 예쁜 모습을 많이 보여줬으니 둘째가 원할 때 써야겠다. 잠시 시간을 내 헌혈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받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선행은 돌고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누는 것에 자체에 의미를 둔 다면 더 기쁠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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