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 그래, 너 여기 있구나!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by 팥쥐아재

장마가 오래 지속되던 지난 8월, 자꾸 숨이 차고 두통이 잦으며 몸이 붓는 것 같다는 아내님의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작년 겨울 장인 어른의 폐암 소식과 올해 초 장모님의 암 전이 소식에 놀란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이었다. 불과 몇 달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 혹시나 검진이 잘못되었으면 어쩌나, 그 사이에 중병이라도 걸렸으면 어쩌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에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병원을 예약하기 전 아내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님은 홍조 띈 얼굴로 나에게 다가 와 속삭였다.


오빠, 축하해. 셋째 생겼어. ^^


아이가 생겼다는 행복감보다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아내님이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정말 부끄럽게도 아이에 대한 원망이었다. 당시 우리는 한국콘탠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아이디어 융합팩토리 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마무리까지 반이 넘는 기간이 남았었기 때문에 지속해야할 프로젝트가 많이 남았었고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내님은 프리랜서 활동과 동시에 그림동화작가 등단을 위해 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꿈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말부부를 하면서도 두 아이를 보살피고 있었고 바쁜 와중에도 일과 꿈을 향해 한시도 쉬지 않는 아내님에게 브레이크가 걸려버리고만 것이었다.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착각에(더 중요한 사실은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원망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심해지는 입덧과 피부 트러블, 배가 불러오면서 잠마저 편히 자지 못하는 아내님을 볼 때마다 원망은 더 커졌다. 함께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회충약을 문제 삼았다. 회충약은 속을 다 쓸어버리는 독한 약이기 때문에 태아의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심한 경우 기형이나 유산의 위험도 있다고 했다. 원한다면 임신중절 수술을 청할 수 있는 입장인데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아내님은 혹여나 기형이 생기더라도 무조건 낳겠다고 즉답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이기적이게도 그 상황을 계산하고 있었다.




결혼을 할 때부터 나는 세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성별에 상관없이 세 아이가 있었으면 했다. 한 아이는 목말을 태우고 두 아이는 나란히 손을 잡으며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는 걸 꿈꿨다.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명상과 운동을 했고,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주기 위해 부단히도 공부했다. 나름 준비된 아빠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셋째가 생겼을 때 나는 그동안 상상했던 평온한 미래보다 현실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으로 외면해 버리고 있었다.


아내님은 셋째라서 빠르다고 했다. 아직 5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태동이 심하게 느껴진다며 지금 두 아이들보다 더 활동적일 거 같다고 했다. 어떻게 벌써 태동을 하냐며 아내에게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어제는 잠자리에 누워 태담을 해달라고 했다. 그동안 원망했던 마음과 미안했던 감정을 녹이고 진심을 담아 태담을 해주었다. 그러자 내가 느낄 정도로 큰 태동을 몇 번이나 이어갔다.


'그래, 너는 계속 거기 있었구나. 내 원망와 외면에도 불구하고 우리 품으로 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너에게 나는 참 몹쓸 짓을 하고 있었네. 너의 자리 한켠을 마련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어. 미안해. 그런데 사실 이런 감정이 처음이 아니야. 엄마가 둘째를 가졌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단다. 사랑을 나눌수록 더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나누려고 하니 겁부터 났어. 참 못난 아빠지만 이해해 줬으면 해. 이제는 사랑과 축복을 양분삼아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기다릴게. 진심으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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