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정인이를 구할 수 있다면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포털사이트를 통해서 접하는 뉴스도 가능하면 긍정적이거나 공부할 수 있는 것만 찾아보기 때문에 뜨거운 감자를 접하는 속도가 현저히 늦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정인이 사건도 아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거다. 어찌 보면 함께 분개하고 이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앞장서야 하는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버젓이 사회를 활보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와 함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요약되어 있는 기사를 보고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아내는 나지막이 '이런 아이들이 많다는데 도와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볼을 타고 떨어지는 맑은 물방울이 진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났다. 어제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녀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셋째 낳으면 조금 더 열심히 해서,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자유를 이뤄야겠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뭘. 너무 무리하지 마."
"아니야. 요즘 나태해졌는데, 부지런히 해야겠어. 그림도 더 많이 그리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부수입 얻을 수 있는 것도 다양하게 생각해 보려고."
"알겠어. 나도 열심히 할게."
"오빠가 돈 욕심이 없어도 도와줬으면 좋겠어."
"나도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여유가 있으면 더 많은 사람한테 후원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까 많이 아쉽더라고. 그래서 나도 네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해서 조금만 욕심 내 보려고."
"응, 10년 안에 꼭 성공하자. 그리고 그때쯤이면 셋째도 어느 정도 커있을 테니까......"
"셋째도 어느 정도 커있을 테니까 뭐? 편하게 얘기해~."
"셋째도 다 키우고 경제적으로 여유되면...... 입양하고 싶어. 나는 이제 더 아이를 못 가지니까...... 정인처럼 학대당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크는 아이가 아직도 많대. 그런 아이들 도와주고 싶어."
아내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나 역시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정도였다. 진지하게 입양을 생각하지 않았다. 셋째를 가지기 전 아내와 입양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있으나 셋째를 가진 후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셋째를 가진 후 힘들어하는 아내가 안쓰럽기도 했고, 아이가 이미 셋이나 있는데 더 가지는 것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남자도 아이를 가져봐야 한다는 아내의 푸념도 한몫 했......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문제가 되는 경제적 여건을 해결하고 나면 몸은 힘들어도 사랑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비록 자신 배가 아파서 낳은 아이가 아닐지라도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그에 합당한 사랑을 주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우선 시간적 여유가 있고 이뤄야 하는 목표가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추후 아이들과도 상의해 보자고 답했지만 나 역시 이미 아내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내의 선함에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아들 셋을 키우면서 생각이 달라질 수 있고, 입양을 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아내의 선함이 나는 물론, 우리 아이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