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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an 25. 2020

천국, 인간에 대한 신의 무한한 사랑 (신곡 6)

La Divina Commedia, Paradiso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 하루 동안 머물렀다. 단테가 본 천국은 제1천 월천에서 제10천 최고천까지 선회하듯이 상승하는 연속적인 구조인데,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빛이 더욱 충만해지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또한 운동 궤도가 넓어지면서 공간이 확대되는 곳이다. 천국은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그분의 영광이 온 우주를 파고들며 찬란히 빛나는데 어느 곳은 다른 곳보다 더욱 빛나는’ 곳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으며 제1천부터 천국 순례를 하기 시작했다. 제1천은 월천으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살았지만 결국은 세상 힘에 지고 만 사람들이 있었다. 제2천은 수성천으로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또한 로마제국의 상황을 노래했다. 제3천은 금성천인데 이곳에서 단테는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 피렌체의 상황을 노래했다. 금성천은 ‘지구의 그림자가 끝나는 최후의 장소’이다.


제4천은 태양천으로 단테는 이 곳에서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보나벤투라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만난다. 제5천은 화성천으로 신앙을 위해 싸우다 죽은 순교자의 혼들이 십자가의 형태로 나타난다. 제6천은 목성천으로 독수리 형상의 영들이 등장하며 이는 ‘정의’를 의미한다. 목성천까지는 인간사회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사람들의 하늘이며 최고의 덕은 ‘정의’이다.


제7천은 토성천으로 11세기의 신학자 성 다미아노가 관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의 인내’를 설교한다. ‘하늘의 하늘’이라 불리는 토성천에 오른 단테는 지구를 뒤돌아보며 ‘그 보잘것없음에 쓴웃음이 나왔다’고 노래한다. 토성천부터는 ‘모든 것이 성스러우며’ 가장 중요한 덕은 ‘사랑’이다. 제8천은 항성천으로 성 베드로, 성 야고보, 성 요한이 단테에게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제9천은 천사들이 머무는 원동천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하늘을 의미하며 모든 자연적 운동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여기까지가 베아트리체가 인도한 천국이다.

 

 베르나르도의 안내를 받아 오른 10천은 최고천으로 삼위일체가 머무는 곳이며 이는 초자연의 세계, 신의 자유와 은총의 장소, 참다운 영원이다. 단테는  곳에서 평화와 하늘의 여왕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황금불꽃깃발을 본다.

 

<신곡 강의>에서 이마미치 교수는 천국편이 지옥편-연옥편과 다른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옥편과 연옥편은 역사적 사건과 인간 세계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죄와 신의 벌 그리고 구원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단테는 지옥편과 연옥편을 노래할 때 역사적 서사시의 두 거장 호메르스와 베르길리우스를 본받아 ‘무사의 여신이여, 나를 도우소서’ 라며 기억의 여신 므네메의 딸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천국편은 도덕철학과 그리스도교의 신학을 전하고 있다. 단테는 ‘지금 내가 건너는 물은 그 누구도 건넌 바 없으며, 미네르바가 바람을 보내고, 아폴로가 이끌어 주며, 아홉 무사가 내게 북두를 보여주노라’며 천국 순례를 앞둔 자신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웅장하게 드러내고 있다. 천국에 관한 지식은 학문과 종교 그리고 예술의 통합이라는 정신적 완성을 이룬 후에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마미치 교수에 의하면 단테가 천국편에서 전하는 몇 가지 중요한 주제는 다음과 같다. 신이 아담에게 부여했던 초자연적 은총, 아담의 배반과 낙원으로부터의 추방, 이로 인해 原罪를 가지게 된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갖는 욕망과 악의 경향성, 이런 상태에서 생각과 말과 행위와 태만으로 짓게 되는 自罪의 위기에 방치된 인간 그리고 원죄를 가진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신이 신에게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속죄 행위에 대한 것이다. 또한 인간의 영혼은 신이 직접 창조한다는 것, 즉 인간의 영혼이란 ‘신의 선의로부터 타자를 거치지 않고 방울 져 떨어지는 것’이어서 ‘끝이 없으며 선의가 새긴 자국은 사라지지 않으리니’ 불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육체는 끝이 있으나 ‘타자를 거치지 않고’ 신으로부터 인간이 직접 받은 영혼은 불멸이며 따라서 부활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原罪와 自罪의 문제, 십자가의 대속, 신이 직접 창조한 영혼과 부활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근본문제이다.

 

그리고 이마미치 교수는 한 가지 사항을 덧붙인다. 인간의 고귀함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스 이래 철학이 생각하는 인간의 품위는 이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악을 초래하기도 한다. 범죄는 대개의 경우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 이성이 일으키는 죄이다. 단테는 천국편에서 ‘신과 닮은 것을 신께서 기뻐하시니’ 라며 ‘불사-자유-신의 모습, 인간이 누리므로, 이들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인간은 고귀함을 잃게 되리라.’라고 노래한다. 죄로 인해 인간이 고귀함을 잃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품위는 ‘죄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교는 ‘죄가 없는 것이 인간의 품위’라고 말하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에게 죄 없는 상태는 생각할 수조차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단테가 ‘하늘의 하늘’이라는 제7천 토성천을 지나 제8천 항성천에 올라 성 베드로와 성 야고보 그리고 성 요한과 나눈 신학적 대화를 들어 보자. 성 베드로는 단테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단테의 답변은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체, 아직 오지 않은 것의 확증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겠지요’이며, 이는 히브리서 11장 1절의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에서 기인한 것이다. 성 야고보는 단테에게 ‘소망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 단테는 ‘소망은 미래의 영광을 확고한 마음으로 기대하는 것, 은총과 공덕이 낳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소망은 미래의 맑은 행복에 대한 확고한 기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 요한이 ‘사랑’에 대해 묻자 단테는 ‘선이 선으로 이해되면 이내 사랑에 불을 붙입니다. 선이 클수록 사랑도 큽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마미치 교수는 <신곡 강의>에서 단테가 그려낸 천국은 관조적 삶, 즉 ‘기도하며 사고하는 장소’로 그저 고요히 잠든 곳이 아니고 희망이 솟아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신만이 있을 때 신은 창조를 했고 신을 배반하는 인간 존재는 신의 창조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받아야 한다. 즉 천국에서 신의 광명이 펼친 손길에 응해서 인간의 영혼이 신의 광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무한자를 받아들이는 유한한 그릇이다’라고 했다. 즉 인간은 신의 무한한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Paradiso, Canto 1 ~ Canto 33


이렇게 단테의 7일간의 지옥-연옥-천국 순례는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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