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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Feb 01. 2020

한 시대의 종언, 희극과 비극이 교차한 인생

영화 <THE IRISHMAN> 후기 (2019)

영화 <아이리시맨>은 갱스터 무비의 참혹하고 암울한 필름 누아르는 아닌 것 같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마피아의 살인청부업자로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 암흑가의 거물이었던 실존인물 프랭크 쉬런(로버트 드니로)의 일생에 대한 그의 회고와 회한이며, 다른 하나는 1975년 발생한 장기 미제사건으로, 1963년 케네디 암살사건과 더불어 여전히 미국 사회에 큰 의문으로 남아 있는 전설적인 노조 지도자 지미 호파 실종사건에 대한 프랭크 쉬런의 진술이다.


영화는 프랭크 쉬런이 들려주는 210분 분량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교차편집하면서 블랙코미디 같은 프랭크의 30대 시절과 우울하고 불안한 50대의 프랭크 그리고 회한 가득한 80대 노년의 프랭크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1950년대 30대의 프랭크는 도축한 소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로 근근이 살아가다가 우연히 마피아의 숨은 실력자 러셀 버펄로니(조 페시)를 알게 되면서 페인트공, 즉 마피아의 살인청부업자가 된다. 그리고 러셀의 소개로 국제 트럭 운전사 조합의 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의 일을 하면서 노조의 유력인사가 된다. 프랭크의 삶이 순조롭고 좋았던 시절 이야기이다. 아마 프랭크가 들려주는 1950년대 회고담의 실상은 폭력, 협박, 매수, 살인, 테러 등 온갖 불법, 부정, 부당행위들이 난무하는 참혹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팔순의 은퇴한 마피아의 거물 킬러 프랭크가 때로는 낄낄대기도 하고 때로는 과시하듯이 늘어놓은, 스윙 재즈 음악이 흐르는 부드럽고 약간 어두운 갈색톤 조명 속의 ‘대단했던 왕년의 이야기’이다. 좋은 친구들과의 좋았던 시절, 여기까지는 희극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프랭크는 마피아의 중요인물로 그리고 막강한 노조의 실력자로 올라선다. 그런데 이 시기에 미국 사회를 뒤흔든 2개의 사건이 터지는데 케네디 암살사건 그리고 지미 호파 실종사건이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노동운동에 뛰어든 지미 호파는 국제 트럭 운전사 조합의 위원장으로, 재임기간 중 조합원의 임금을 보장하는 전국화물기본협정 성사, 조합원 230만 명 돌파 등 조합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미국의 전설적인 노조 지도자였다.


영화에서 프랭크는 지미 호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In the 50’s, he was as famous as Elvis. In the 60’s, he was as famous as the Beatles. Next to the President he was the most powerful man in the country.” 그는 노동계의 대통령이었고 노조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권력유지와 조합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지미 호파는 케네디家와의 극단적인 대립, 마피아와의 거래 의혹, 각종 조직범죄 연루 등이 터지면서 결국 공금유용과 뇌물공여로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닉슨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지미 호파는 10년간 노조 관련 활동 금지를 조건으로 사면을 받지만 그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작업을 벌이다 1975년 7월 30일 디트로이트에서 실종된다. 지미 호파의 실종에는 마피아 연루설, 노조 연루설 등 케네디 암살사건 못지않게 수많은 음모론이 난무하지만 현재까지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知人에 의하면 지미 호파는 단순히 전설적인 노조 지도자 혹은 마피아와 결탁한 부패한 사회 지도층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넘어서, 미국 현대사에서 케네디와 더불어 전후 미국의 번영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밝혀지지 않은 의혹 속의 죽음으로 미국인의 인식 속에 깊이 각인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20세기 미국의 이상을 상징했던 케네디가 스캔들과 의혹 속에 암살된 것처럼, 대공황기를 이겨내고 번영기를 누렸던 미국 노동계급의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는 인물 지미 호파 또한 부패와 범죄에 연루되고 의혹 속에 실종되면서, 케네디와 더불어 ‘20세기 미국의 이상’이 의혹 속에서 허무하게 끝났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20세기 미국인들의 보편적 정서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연결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영화 <아이리시맨>은 이제는 늙어 버린 20세기의 거장들이 20세기 미국의 상징적인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허무하고 의혹에 찬 20세기 미국의 종언을 고하면서 기록한 비망록 혹은 弔辭와도 같은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同人이 덧붙이길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이런 영화를 다시 보지 못할 것 같다” 며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왜냐하면 이제는 늙어버린 마틴 스콜세지, 조 페시,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라는 20세기의 거장들이 그들과 같이 늙어온 관객들과 함께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면 케네디와 지미 호파가 상징하는 좌절하고 상처 입은 미국의 20세기도 역사 속의 과거가 되어 잊힐 것이기 때문이다.


매우 날카롭고 통찰력이 넘치며 또한 아련함을 남기는 評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프랭크 쉬런의 일생이다.


도축한 소고기를 운반하던 트럭 운전사에서 마피아의 중요인물로 그리고 막강한 노조의 유력인사로 올라선 프랭크는 마피아의 숨은 실력자 러셀과 막강한 노조의 최고 권력자 지미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위대한 개츠비’가 된 듯한 분위기였다. 사실 이탈리아계인 러셀과 지미 그리고 아일랜드계인 프랭크는 서로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냈다. 자녀가 없는 러셀과 이미 자녀가 장성한 지미는 모두 프랭크의 딸들을 친조카처럼 여겼는데 특히 둘째 딸 페기를 각별히 대했고 페기는 지미 삼촌을 무척 따랐다. 하지만 사면으로 출소한 지미가 노조 위원장으로 복귀하려는 과정에서 이미 배후에서 노조를 장악하고 노조 연금을 주물럭거리는 마피아와 충돌하게 되고 결국 고위층의 불편함이 커지면서 러셀의 명령을 받은 프랭크는 지미를 유인해서 살해하고 시신은 소각된다.


집으로 돌아온 프랭크는 지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그때부터 둘째 딸 페기는 프랭크와 말을 하지 않는다. 지미 호파 실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법당국에 소환되고 러셀과 프랭크도 별건으로 구속된다. 러셀은 뇌졸중으로 옥중에서 사망하고, 관절염을 앓고 있던 프랭크는 출소하지만 곧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무서운 세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려고 그랬다’는 그의 호소를 딸들이 외면한다. 프랭크는 홀로 남겨져 쓸쓸하게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팔순의 프랭크는 젊은 사제의 도움으로 기도문을 암송하다가 사제가 ‘과거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는 것이 있느냐 그리고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같은 일을 하겠느냐’고 묻자 프랭크는 ‘어떤 사람이 그런 통화를 하겠느냐’라고 눈물 섞인 대답을 한다. 1975년 디트로이트에서 지미를 죽이고 돌아와 지미의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한 그런 통화를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느냐는 프랭크의 회한이다. 어떤 통화인지 사제가 묻자 프랭크는 고개를 저으며 지미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과거는 블랙홀과 같은 것이다. 블랙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듯이 과거에만 집착하면 새로운 현재를 살 수 없다. 지미 호파 청부살인 이후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황금시계와 금화로 만든 반지 그리고 고급스러운 단장을 들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팔순의 노인이 된 지금까지 프랭크는 50대에 있었던 비극 속에서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이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제는 프랭크에게 통회의 기도를 권하고 며칠 후 사죄경을 읊으며 고해성사를 준다.


영화 <아이리시맨>은 거칠고 무감각한 삶을 살면서 은성하면서도 허무하고 유쾌하면서도 불안하고 아주 많이 달려왔지만 결국 갇혀버린 듯한 인생의 죄와 벌 그리고 용서에 대한 관조적인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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