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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Feb 08. 2020

영화 <작은 아씨들> 후기 (2019)

Little Women, 2019

<Little Women, 2019> 원작의 힘, 탁월한 시나리오 구성과 뛰어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명연기가 만들어낸 아름답고 유쾌하며 약간 멜랑꼴리한 영화!


1868년에 발표된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루이사 메이 올컷 여사의 장편소설 ‘작은 아씨들’을 나는 몇 번이나 읽었을까? 정확한 횟수는 모르겠지만 두 자리 숫자인 것은 확실하다. ‘Christmas won’t be Christmas without any presents!’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외우지 않아도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옆구리에 끼고 살았던 계몽사의 50권 전집 어린이 명작동화 덕분이다. 이미 수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작은 아씨들>을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을 통해 흑백영화 – 사실 나는 흑백으로 만들어진 옛날 헐리웃 영화의 밋밋한 평면 느낌을 좋아한다 – 로도 본 듯하다. 이렇듯 익숙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 <작은 아씨들>을 개봉 전에 기획전을 통해 미리 본 것은 전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냥 따라가서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모든 것이 훌륭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제일 궁금했던 것은 이렇게 익숙한 이야기 혹은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에 어떻게 새로움을 입히면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의미를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두 가지 전략으로 이 쉽지 않은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첫 번째는 교차편집이다. 올컷 여사의 원작은 마치家의 네 자매 메그, 조, 베스, 에이미가 유년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는 10년의 세월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해 준다. 반면 영화는 성인이 된 둘째 조의 시선으로 현재 시점인 성년기의 이야기와 과거 시점인 유년기의 회상을 묶어, 두 개의 타임라인 즉 네 자매의 성년기와 유년기를 수 차례 반복해서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감독은 성년기와 유년기라는 두 개의 타임라인을 다룰 때 서로 다른 느낌의 영상을 연출했다고 한다. 성년기 즉 현재는 다소 차가운 톤의 분위기로 연출했고 반면 유년기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화면으로 연출했다는 것이다. 차가움과 황금빛, 현재와 과거가 번갈아 반복되면서 영화의 흐름은 입체적이 되고 익숙한 이야기에는 새로움이 입혀진 것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탁월한 시나리오 구성과 뛰어난 연출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다.


두 번째는 매력적이고 생생한 캐릭터이다. 원작에서도 네 자매는 각기 다른 성격과 매력을 지닌 인물, 즉 아름답고 온화한 메그, 활달하고 적극적인 조, 착하고 내성적인 베스, 귀엽고 야무진 에이미로 묘사되어 있다. 영화는 올컷 여사가 묘사했던 네 자매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영상을 통해 활짝 드러내고 있다. 감독은 생생한 캐릭터 형성을 위해 배역마다 서로 다른 색상의 의상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편 영화에서 캐릭터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와 관계 형성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멈블코어(Mumblecore)’라는 영화 장르를 대표하는 배우 출신의 감독이며 극작가이다. 멈블코어는 극의 진행 동안, 발생한 사건 자체보다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 양상에 초점을 두어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인디영화의 서브 장르로 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기가 중시된다. 사실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도 특별하고 중요한 사건의 발생과 전개보다 등장인물들이 많은 양의 일상적인 대화를 서로 간에 다각적으로 이어가면서 인물 간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 속에서 캐릭터들이 보다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매력적이고 생생한 캐릭터와 관련하여 탁월한 캐스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둘째 조의 배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조는 원작에서는 올컷 여사가, 영화에서는 그레타 거윅 감독이 투영된 인물이다. 부족한 환경과 미흡한 성취경험으로 우울했던 젊은 날을 힘들게 견디면서 마침내 자신의 재능을 실현하여 삶의 성공궤도에 올라서는 작가 지망생 조를, 그리스 조각상 같은 외모에 현대적 이미지가 묘하게 섞여 있는 시얼샤 로넌은, 재능이 넘치지만 초라하고 강인하지만 외로우며 독립적이지만 방황하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구체화하고 있다.


네 자매 모두 훌륭한 캐스팅이지만 한 사람만 더 꼽으라면 막내 에이미 역의 플로렌스 퓨에게 찬사를 보낸다. 내 기억으로 원작에서 에이미는 귀엽고 자기중심적이고 살짝 사치를 부리는 캐릭터로 주로 유년기 모습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플로렌스 퓨가 보여 주는 에이미는 다르다. 원작에 나타난 유년기의 에이미를 지나, 영화가 보여주는 성년기의 에이미는 확실한 자기 주관과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주어진 환경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 않고 당당하게 삶의 선택을 해나가는 강인하고 현명한 여성이다. 플로렌스 퓨가 보여 주는 ‘삶의 주체로서의 강인하고 현명한 여성상’은 파리에서 나누는 로리와의 대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유년시절부터 네 자매 모두와 친한 친구로 지내온 이웃 부잣집 도련님 로리를 파리에서 만난 에이미는, 그의 방탕하고 불성실한 삶을 질책하며 – 원작에서 에이미는 안타까워했다 –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때 보여 주는 플로렌스 퓨의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자세, 눈빛, 목소리는 압도적이다. 이 대단한 배우는 유년기의 에이미와 성년기의 에이미, 즉 철없는 소녀에서 강인하고 현명하며 매력적인 여인으로 성장한 에이미를 당당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러 저런 분석을 차치하고 영화 <작은 아씨들> 아름답고 유쾌하며 약간 멜랑꼴리한 영화다. 특히 다시 돌아가지 못할 유년의 아름다움, 황금빛 유년기에 대비되는 차가운 성년의 , 철든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쓸쓸함마저도 울컥하며 아름답게 다가온다. 올컷 여사의 원작이 본래 그렇고, 그레타 거윅 감독의 각색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명연기가 원작의 미덕을 더욱 입체적이고 화사하게 영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셨다면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정말 좋은 영화다. 마지막으로 영화 <작은 아씨들> 에피그라피를 전하 후기를 마친다.


“I had lots of troubles; so I write jolly tales.”
 Louisa May Alcott


아! 한 가지 더 남아 있다.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 사실 이 영화는 스포일이 불가능할 정도로 줄거리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스포일 가능성이 있는 곳이 바로 영화의 결말 부분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조명이 켜질 때까지 객석에 앉아 계시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객석에 앉아 있는 당신은 양자역학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장인 양자역학의 세계…(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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