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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Nov 18. 2020

오후 3시 홍차의 시간에 쓴 장례미사 참례기

새벽 5시 30분, 비교적 따뜻한 겨울 날씨였지만 밖은 여전히 어둡고 비까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미사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성당에 도착해보니 대성전 앞에는 이미 성당의 연령회원들이 장례행렬 준비를 모두 마치고 도열해 있었다.


고인은 101살의 여인이었다. 은은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십자고상을 받쳐 든 이를 필두로 은성한 촛불행렬이 뒤따르고 사제가 입장하였다. 그 뒤를 이어 운구행렬과 삼십여 명의 유가족들이 슬픔 속에 입장하여 자리를 잡자 드디어 장엄한 장례미사가 시작되었다.


사제는 강론을 통해 위로와 희망 가득한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백수를 넘기신 고인의 삶에 대해 ‘남 모르는 땀과 피와 눈물’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 삶은 매우 복되었을 것이라며, 고인의 일생을 회고하였다.


사람의 일생에는 나이별로 다르게 부르는 명칭, 즉 이칭이 있다. 15세는 지학(志學), 20세는 약관(若冠), 30세는 입지(立志), 40세는 불혹(不惑), 50세는 지천명(知天命), 60세는 이순(耳順), 70세는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30대 중후반의 젊은 사제는, 자신은 아직 불혹과 지천명 그리고 이순과 종심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고인은 인생의 그 모든 지점들을 지나왔음을 상기시켰다.


가족들조차 고인의 나이 든 모습만 기억하고 있겠지만, 고인은 꽃다운 처녀 시절과 아이를 키우던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 그리고 자손들을 챙기는 젊고 건강한 할머니의 시기를 모두 지나오면서, 신의 은총 안에서 불혹과 지천명과 이순과 종심을 경험하였으며 이제는 100세 즉 상수(上壽)를 넘어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는 것이다.


미사가 난 후, 사제는 성수를 뿌리고 분향을 하며 고별의식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십자고상을 앞세운  장례행렬이 대성전을 빠져나갔다.  그친 성당 마당에 나와 보니 레지오 단원인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성당의 여러 레지오 단체들이 각자의 깃발을 들고 레지오 단가를 부르며 고인을 배웅하고 있었다.


“남 모르는 땀, 내 피와 눈물 받아 주소서”라는 노랫말이 읊조리듯 나지막히 들리는 가운데 운구행렬은 레지오 깃발들 사이를 지나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는 성당을 빠져나갔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러면 고인이 떠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고인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세요.”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평화의 인사’를 장례미사에서는 생략한다. 이는 세상을 떠난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온전히 얻기를 바라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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