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최근 가톨릭신문은 ‘기후는 공공재입니다’라는 기사를 몇 차례 보도했는데, 향후 총 20여 회에 걸쳐 기획기사로 연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즉시 기후협약에 복귀하고,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개최된 기후 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0년 대비 50% 감축하겠다는 적극적인 계획을 선언했다. 최근에는 ‘기후 자본(climate capital)’이라는 단어도 사용되고 있다. 이전에 비해 주요 국가들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과 대응 속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우리 시대의 실존적 위기”라는 기후위기 그리고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기후위기 대응의 본질에 대한 글이다. 관련 자료들은 가톨릭신문 기사와 교황청에서 인용하였다.
두 개의 중요한 사건
2015년에는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두 개의 중요한 국제적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기온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약, 즉 <파리협약>이 유엔 기후 변화 회의 폐막일인 2015년 12월 12일에 195개국이 채택하여 체결되었다. 이후 주요 기후 변화 당사국들이 파리 협정을 비준하였고, 2016년 11월 4일부터 기후 협정으로서는 최초로 포괄적인 구속력이 적용되는 국제법으로서 효력이 발효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2015년 5월 24일에 반포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이다. 이 회칙은 ‘공동의 집’, 곧 지구를 돌보는 데에 관한 것으로, 6장 246항에 걸쳐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성찰하고,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 만능주의와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온전한 발전을 위한 접근법으로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생태 교육을 촉구하고 있다. 이후 교황청은 2020년 5월 24일부터 2021년 5월 24일까지 한 해를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로 선포하였으며, 이어서 2022년부터는 <찬미받으소서>가 제시하는 통합 생태론 정신에 따라 온전히 지속 가능한 세계로 나아가는 7년 여정을 시작하자고 요청하였다.
지구 평균 기온 14℃
그리고 1℃ 상승의 의미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 즉 약 1만 년 전부터 지구는 평균 기온 14℃의 상대적으로 평온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육상 생태계가 지속되고 있다. 사실 지구가 평균 기온 14℃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자연적으로 공기 중에 0.03%(280ppm)를 차지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덕분이다. 이산화탄소는 지구로 오는 태양에너지를 그대로 통과시키는 반면 우주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는 가두는 온실효과를 발생시킨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전혀 없으면 지구의 평균 지상 기온은 -19℃로 떨어져 생명체가 살 수 없다. 그런데 적정량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33도를 높여 14℃의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화석연료를 태워 이산화탄소를 약 0.01%(135ppm) 증가시켰으며, 이로 인해 지구의 평균 기온은 대략 1℃ 상승했다. 참고로 2020년 지구 평균 기온은 14.9℃로 산업화 이전 대비 1.2℃ 높았다고 한다. 체온이 몸의 건강상태를 알리는 중요한 지표인 것처럼 지구의 평균 기온도 지구의 건강상태를 알리는 중요한 지표다. 지구 평균 기온이 대략 1℃ 상승하면서 각종 이상기후 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은 사실 ‘역대 가장 따뜻한 3년 중 한 해’라고 한다. 2020년 북극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이례적으로 높았는데, 특히 북극 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3~5℃ 높게 나타나 188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시베리아 북극권의 베르호얀스크는 2020년 6월 20일 최고 기온이 38℃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1885년 이래 최고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벨리는 2020년 8월 16일 최고 기온 54.4℃를 기록했다. 2019년 7월 25일 파리는 42.6℃, 2018년 강원도 홍천은 41℃ 그리고 서울은 39.6℃를 기록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장기 가뭄은 세계 곳곳에서 최악의 산불 사태를 일으켰는데, 호주 남동부의 경우 2019년 9월 시작된 산불이 2020년 2월까지 이어져 호주 전체 산림의 14%가 소실되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서부지역에서 2020년 6~8월 산불이 지속되었다.
한편 대규모 홍수 피해도 극성을 부렸는데 2020년 6~8월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기록적인 긴 장마와 집중호우, 많은 강수량 등으로 큰 피해를 남겼다. 특히 2021년 2월에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녹아 홍수를 일으켰다.
북대서양에서는 2020년 한 해 동안 30개의 열대성 저기압이 발생해 과거의 최다 발생 기록을 경신했다. 동아프리카와 인도, 파키스탄 일대에서는 2019년 말부터 최악의 메뚜기 떼가 습격해 하루 35,000명분의 식량을 먹어 치웠다. 온난화는 메뚜기 떼의 발달과 이동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이처럼 지구 평균 기온 1℃ 상승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 최근 1~2년 사이에 집중되고 있는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이미 2018년 인천 송도 회의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왜 1.5℃인가?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 평균 기온 1℃ 상승은 해수면 상승, 폭염, 폭우, 가뭄, 산불 등의 각종 자연재해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만약 인류가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고 지금처럼 지속할 경우, 2100년 지구 평균 기온은 1986~2005년 대비 2.6~4.8℃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2℃ 상승하면 ‘북극해 해빙이 10년에 한 번 모두 녹으며 산호초의 99%가 소멸’하고, 지구 평균 기온이 1.5℃ 상승하면 ‘해빙은 100년에 한 번 모두 녹고 산호초의 10~30%는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1.5℃를 넘으면 지구 생태계는 전멸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런데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멈추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감축해야 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carbon neutral)’ 달성, 즉 배출한 탄소를 모두 흡수해서 실질 탄소 배출량을 순제로(net-zero)로 만들어야 한다.
‘탄소예산’이라는 개념이 있다. 지구 평균 기온의 특정 상승 제한점까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총량을 탄소예산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1.5℃ 이상 상승을 막기 위한 전 지구적 탄소예산은 2018년을 기점으로 계산할 때 4,200억 톤이며, 현재 인류는 연간 420억 톤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즉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고 유지한다면 2021년을 기점으로 앞으로 7년 후면 ‘1.5℃ 탄소예산’은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한편 <유엔 환경계획(UNEP: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에 의하면, 1.5℃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연간 최소 7.6%의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 참고로 코로나 19가 전 지구를 강타한 2020년의 온실가스 감축은 전년 대비 7% 수준이었다. 팬데믹이라는 외생요인으로 인한 급격한 경제활동 위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극심한 고난을 겪는 가운데 얻어진 결과가 전년 대비 7%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이다. 다시 말하면 향후 10년간 전 인류가 2020년에 겪은 것보다 더 힘든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혼란을 헤쳐나가야만 지구가 당면하고 있는 기후 위기를 겨우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 사회, 경제, 정치의 위기이기도 하다.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에 나오는 후렴구인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에서 그 제목을 가져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인간이 하느님과 맺은 관계, 자기 자신과 맺은 관계, 타인과 맺은 관계, 피조물과 맺은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 패러다임인 온전한 생태학의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생태 회칙으로도 알려져 있는 <찬미받으소서>의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자.
먼저 회칙은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오염과 쓰레기, 쓰고 버리는 문화, 공공재인 기후, 물 문제, 생물다양성의 감소,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세계적 불평등 그리고 이러한 심각한 사태에 대한 사람들의 미약한 반응 등 현재의 생태적 위기의 여러 측면들을 제기한다.
특히 공공재인 기후에 대해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25항)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원과 경제적, 정치적 힘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문제를 호도하거나 문제의 증상들을 감추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6항)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48항)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정치, 경제 토론에서 이러한 이들은 “단순한 부수적 피해자들”(49항)로 여겨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따라서 “참된 생태학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49항)이고 이를 통해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모두 듣는 것”(49항)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양식과 생산과 소비 형태를 기꺼이 바꾸려는 마음이 부족”(59항)한 상황 속에서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는 법적 틀”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회칙은, 성경의 관점에서 “자연환경이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95항)라는 점을 강조하며, 철학과 사회과학 관점에서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증상과 심층적 원인들을 성찰”(15항)한다. 그리고 ‘온전한 생태학’의 관점에서 “자연은 우리 자신과 분리되거나 우리가 사는 단순한 배경으로 여겨질 수 없으며”(139항), “오늘날 환경 문제의 분석은 인간, 가정, 직업 관련 도시 상황의 분석과, 인간들 자신과의 관계 분석과 분리될 수 없다”(141항)는 점, 따라서 “우리는 환경과 사회와 관련된 두 가지 별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139항)이라고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회칙은 “현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자기 파괴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는 데에 도움을 줄” (163항) 실천적 제안으로 ‘국제 공동체의 환경에 관한 대화, 새로운 국가적 지역적 정책을 위한 대화, 정책 결정 과정의 대화와 투명성, 인간 성취를 위한 정치와 경제의 대화,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인간 성취를 위한 정치와 경제의 대화’와 관련하여, “윤리 원칙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새로운 경제와 더불어 투기 금융 관행과 가상의 부를 규제하는 새로운 방식”(189항)이 개발되어야 하고, “환경은 시장의 힘으로 바르게 보호되거나 증진될 수 없는 재화”(190항)이며 “자연 자원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촉진하려는 노력은 돈 낭비가 아니며 오히려 중기적으로 다른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191항) 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욱 근본적으로 “발전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것”(194항)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사람들의 진정한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과 관련되어야 하며 동시에 “정치학이 없는 경제학은 정당화될 수 없다”(196항)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즉 정치학과 경제학은 함께 새롭고 온전한 접근법을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회칙은 모든 사람의 생태적 회개가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신앙과 그리스도교 정신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 세상의 보호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갖도록”(216항) 깊은 동기 부여를 해 주는데, 이를 위한 개인적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사회 문제는 공동체 관계망이 다루어야”(219항) 하고, “생태적 회개는 감사와 관대를 의미하며 창조성과 열정을 발전시킬 것”(220항) 이라며 회칙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쁘면서도 불편한 이러한 긴 성찰의 결론으로”(246항), 두 가지 기도, 곧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와 ‘그리스도인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를 드릴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기쁘면서도 불편한 이러한 긴 성찰”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
기후위기와 관련된 사태의 심각성은 세 가지 측면을 지닌다. 첫째는 기후위기의 긴박함과 전 지구적인 생존기반 붕괴이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물 부족, 해수면 상승, 홍수와 가뭄, 식량난, 수천종 생명체들의 멸종 등이 지구 전역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같은 전 지구적 재난상황은,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경제적 불안정과 갈등 양산, 국가 간-인종간 분쟁 등 개인과 개별 국가가 통제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우리를 몰아갈 것이다. 즉 우리는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하고 있다.
둘째는 전 지구적 불평등 구조이다. 스탠포드대 연구진이 2019년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1인당 국민총생산을 17~31% 감소시킨 반면, 선진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10% 증가시켰다. 산업구조의 특성상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압도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기후위기는 ‘기후 정의’의 문제로 이어진다. 사실 생태 난민-기후 난민들은 모두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이들이며, 이들은 국제법상 난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모두 듣는 것”에 마음과 정신과 힘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생태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난 두 세기의 성장은 늘 온전한 발전을 이끌지 못하였다는 것”과 “많은 도시들은 거대하며 비효율적인 체계를 갖고 있으며 에너지와 물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생활양식과 생산과 소비 형태를 기꺼이 바꾸려는 마음”으로 “발전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후위기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기쁘면서도 불편한 긴 성찰’은,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대화와 생태적 회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감사와 관대함을 의미”하며 “창조성과 열정을 발전시킬” 생태적 회개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회개의 본질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가깝다. ‘메타노이아’, 즉 잘못된 길로 가던 삶을 올바른 길로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