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재하고 있던 심리학자 시리즈를 올리려고 하였으나, 날이 날이닌 만큼 계엄의 그날, 나의 스케치를 기록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린다.
2024년 12월 3일.
나는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직장 주변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있었다.
'띠링'
취미단톡방에 있는 아는 동생이 메시지를 올렸다.
"어떡해요! 계엄이 터졌대요!"
에이 설마. 나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던 국밥집의 TV를 보았다.
대통령의 계엄담화문 발표.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며 국밥을 마저 먹고 집으로 갔다.
집에 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의 늙은 고양이에게 약을 주고 사료를 주었다.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 계속해서 유튜브에서 생중계하는 계엄라이브 방송을 보며 상황을 주시했다.
여기저기 채널을 뒤져보다가 이재명대통령의 라이브 방송을 보았다.
"지금 당장 국회로 와주십시오."
'가야 되나?'
남편에게 물어봤다.
"가야 돼?"
"괜찮아. 일단 두고 보자."
남편은 샤워를 끝내고 스킨로션을 바르고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 이재명대통령의 라이브가 끊겼고, 서둘러 다른 채널들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고 진입하려는 시도를 했다.
나는 남편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며, "어떡해? 가?"라고 물었고,
남편은
"에이 시발!"
한마디를 남긴 채,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남편이 신발장에 오랫동안 처박아두었던 군화를 꺼내는 순간 깨달았다.
'아 죽으러 가야 되는구나'
이 결정은 선택이 아니었다.
다시금 이 나라에, 후세대에 독재정권의 치욕을 안겨주느니 죽는 게 나았다.
나는 남편과 따라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에 되돌이키면서 이 상황을 생각해 봤는데, 내가 정말 이렇게 비장한 생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식간에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모르는 내가 판단한 생각과 행동들이라 나도 놀랐다.
어렸을 적 어렴풋이 보았다. 광주사태의 피의 참상을...
교수였던 아버지께서 학생들에게 빼앗아서 집에 보관했었던 빨간 테이프.
내가 그걸 왜 꺼내보았는지...
그 피가 가득한 시체들... 그 충격적인 장면들.
아마 그것이 나를 그렇게 움직였으리라.
집에서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길에 몇 대의 장갑차를 보았다. 점점 몸이 떨려왔다.
급하게 나와서 가족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리 어머니와 시어머니께는 차마 죄송해서 카톡을 보내지 못하고 언니와 형님께 카톡을 보냈다.
내가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면 우리 어머니와 고양이를 잘 부탁한다. 집비밀번호는 000이다.
여의도 근처에 다 달았을 때는 차들로 꽉 막혀있었다. 신호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움직였고, 차가 정체되어 있는 구간에선 아예 차를 두고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다들 몰려왔구나. 다들 같은 생각이구나. 울컥함이 치솟았다.
국회의사당 근처까지 도착했을 때, 우리는 라이브방송으로 비상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내용을 들었다.
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에는 남편도 나도 너무나 허기졌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시켜서 햄버거를 기다리는데, 매장 안의 트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둘 다 건빵바지 입고 남편은 군화에 나는 운동화 신고 있었는데...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트리의 전구불빛은 평화롭게 반짝거리고, 우리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비상계엄#기억#심리#사회심리학#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