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오해

by 엡실론

글에서든 말에서든 최대한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려고 한다. 체감할 수 없는 단어 사용, 중언부언을 자제하고 논리를 세우기 위한 이유들도 붙인다. 읽고 듣는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느낄지는 모르겠다. 이미 기록된 나의 글들에서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면 공염불이긴 하다. 증명되지 않는 말은 허황되다. 그래도 이렇게 굳이 써보는 이유는 아마 자기방어기제 때문일 것이다.

작가도 아니고 콘텐츠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도 아니지만 언어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오해를 막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이유를 붙여 어떤 내용을 쓴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나의 논리가 빈약해서, 혹은 본인의 생각과 달라 기분이 나빠서일 수도 있다. 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나의 의도와 다르게 읽혀 그렇게 되는 일만은 원하지 않는다.

개념어를 쓰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요 며칠은 가성비란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비용 대비 편익을 뜻하는 것이기에 모든 재화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가성비가 좋은 식당, 자동차, 여행... 한도 끝도 없다. 어려운 말도 아니기에 대부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가성비가 나쁘다는 말은 구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 과연 그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충분할까. 어떤 식당은 가성비가 나쁘다. 가성비가 나쁘기에 그곳에서 돈 주고 사 먹을 일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다. 양이 부족해서, 맛이 없어서, 위생이 별로라서, 웨이팅이 있어서, 접객이 나빠서 등등.. 이 모든 이유가 가성비가 나쁘다는 표현 하나에 숨어 버린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한지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왜 했는지가 중요하다. 살인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유를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살인도 있는 법이다. 구매하지 않았다는 표면의 행동보다는 구매하지 않게 된 내면의 이유가 더 중요하다. 특정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여겨질 수는 없다.

그래서 개념어를 쓰고 나면 늘 찝찝함이 남는다. 과연 나의 의중을 상대가 정확히 이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양이 부족해서 식당에 가지 않는 사람과 질이 떨어져서 가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유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용도 편익도 한 가지 요소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이 선택하는데 주요한 부분을 있음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주요한 부분이 모여 하나의 독특한 인격을 구성한다.

나도 상대를 오독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거다. 일일이 세부적으로 묻고 따져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저 최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신경을 써볼 뿐이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다면 최후의 기댈 곳은 결국 상대방의 호의일 것이다. 선의로 해석해주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조금의 오해 정도는 별 문제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누구나 본인 스스로를 정확히 안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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