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제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누구의 판단도 각자에겐 최선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식을 도박처럼 하고 돈을 잃는 사람들조차 최선을 다해 합리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돈을 걸고 하는데 누가 장난처럼 하겠나. 머리가 아플 정도로 차트를 보고, 뉴스를 탐독하고, 고민하고, 결정한다. 남이 보기에나 장난 같아 보일 뿐이다. 대부분의 행동은 그 사람의 최고 역량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강제로 한 선택이 아닌 이상 귀찮아서 대충 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것조차 정신력의 총량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 방이 깨끗한 것이 좋다. 대학 다닐 땐 책을 좀 읽어야 한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애는 하지 마라 등등.. 잔소리는 늘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잔소리는 가치 판단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뭐가 좋고 나쁘고, 당위의 문제를 얘기한다. 개인이 선택할 문제에 타인이 판단을 내려준다. 나의 선택이 너의 선택보다 좋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난 이게 좋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경제학의 얘기와는 정반대다. 갓난아기들도 뭘 못하게 하면 싫어한다. 판단에 개입당하기 싫어하는 것은 본능적이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잔소리는 종종 지혜로 포장된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지혜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혜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지혜는 대부분 가치 판단을 다룬다. 어느 것에 가치를 둘 것인가의 문제다. 노인이 젊은이에게 뭘 하라고 해도 먹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이대마다 중점을 두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 이전에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가치로 남의 행동을 재단한다. 그걸 어른의 지혜이자 조언이라 착각하면서.
지식은 유용하지만 지혜는 무용하다. 지식은 폐기 처분되는 한이 있어도 낡지는 않는다.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사실이다. 지식은 기분이 나쁘든 말든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 기분이 나쁘다고 변호사의 법률 조언을 무시한다면 어떨까. 백종원의 조언을 무시한 채 나는 원래 이렇게 한다는 골목 식당은 또 어떤가. 지식을 무시하면 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지혜는 낡는다. 10년은 생각보다 짧은 세월이다. 하지만 10년 전 대학생활과 취업 경험을 지금 얘기하면 어떻게 될까. 낡은 지혜로 현대에 깨달음을 주기는 어렵다.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조차 지혜에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역량 덕분일 것이다. 지혜는 무시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히려 무시해야 잘 풀릴 수도 있다.
꼰대가 대단한 게 아니다. 지식 전달이 아니라 자꾸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면 꼰대가 된다. 변하는 것들을 변치 않게 적용시키려 하면 곤란하다. 본인이나 그렇게 하시든가. 나는 적어도 사실과 의견을 구별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마 말을 줄이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다이어트 때문에 굶겠다는 친구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고야 말았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