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김밥과 떡밥

by 엡실론

학식을 먹던 시절 얘기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지만, 친구랑 밥을 먹는 일은 늘 이 말과 시작된다. 오늘 뭐 먹을래. 늘 반복되지만 그렇다고 딱히 메뉴를 미리 정하지도 않는다. 끌리는 게 있냐는 하나마나한 질문을 서로 던진다. 당연스럽게도 둘 다 별 생각이 없다. 그렇게 일단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사실 별 상관없으면서도 친구랑 먹기에 학식은 왠지 너무 대충 때우는 느낌이다. 나가서 먹어야 할 것만 같다. 또 대학생 때는 교문 밖에서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좋은 기분이 든다. 구색을 갖추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웬만하면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맛. 비싸지 않은 가격.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메뉴가 필요하다. 돈가스 덮밥은 그런 상황에서 꽤 괜찮은 음식이다. 소위 가츠동.

그날도 그렇게 골목을 돌고 돌아 내가 자주 가던 덮밥 집에 도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사람이 많다. 다음 수업도 있고 이걸 뭐 기다려서까지 먹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가츠동은 흔한 음식이다. 파는 곳도 많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식당을 가보기로 했다.

원래 갔던 곳에서 3분 정도 떨어진 위치. 그런데도 사람이 별로 없다. 냉탕과 온탕 같은 반응 차이에 이곳 사장님이야 슬프겠지만, 손님 입장에선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이 시간이 쎄하기만 하다. 그리고 귀신같은 것을 믿지는 않지만, 이 쎄한 느낌은 맞아떨어질 때가 정말 많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김이 나는 가츠동을 받고 숟가락을 찔러 넣었다. 질퍽하다. 직관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든다. 소스가 스며들어서가 아니다. 물을 많이 잡아서 그렇게 된 밥. 밥과 돈가스가 8 할인 음식에서 밥이 엉망이면 말 다 한 거다. 그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난 건 얼마 전 김밥을 먹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집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을 샀다. 맛을 기대하며 사지 않는다. 2천5백 원에 많은 것을 바랄 정도로 비양심은 아니다. 라면과 함께 적당히 점심을 때울 김밥 한 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 온 김밥은 그 간단한 역할조차 해내질 못했다. 여기도 밥이 문제였다. 김밥이 아니라 떡밥을 샀다.

가츠동과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다. 그렇다고 맛있게 만들기 쉽다는 뜻은 아니다. 단순한 음식일수록 기본기가 부실하면 흠이 크게 드러난다. 하나만 잘못돼도 그 맛이 튄다. 밥이 메인인데 밥이 잘못되면 다른 게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다. 내가 사장이면 밥이 잘못되면 다 버리고 새로 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버릴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같은 쌀로 매일 하는 밥이다. 물 조절을 못한다는 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고급 초밥집처럼 밥을 잘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종종 마을버스를 탈 때도 떡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버스 기사들이 프로 레이서처럼 레브 매칭(Rev Matching) 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출발부터 차가 덜덜거리는 건 아니지 않나 싶은 거다. 수동 운전을 하면서도 속력과 기어비 rpm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차가 덜덜거리든 울컥거리든 움직이기만 하면 그만이고 그렇게 십수 년을 운전해온 것이다. 발전도 개선도 없다.

요즘은 최선을 폄훼하는 것이 유행인 모양이다. 너무 열심히 살면 바보 같아 보이는 듯하다. 뭐 언제는 안 그랬나 싶기는 하지만 베스트셀러를 보면 하나같이 열심히 살지 말고 좀 쉬어 가자는 소리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같은 게 인기 있다는 책 제목이다. 내용이야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제목만 봐서는 일단 읽고 싶지가 않다. 인간의 강함에는 한계가 있지만 나약함에는 끝이 없다. 일부러 약해질 필요는 전혀 없다.

프로페셔널리즘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최고가 되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누구나 추구했으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직업윤리를 가지고 기본적인 것들을 잘하는 것. 식당은 위생을 지키고, 떡밥을 만들지 않는 것. 버스는 덜덜거리지 않는 것. 학자는 정교수를 달아도 논문을 쓰는 것. 선장은 승객을 대피시키는 것. 공무원은 기록을 삭제해 구속되지 않는 것. 그런 정도 아닐까. 대단한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런 태도를 만드는 건 보상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나 내가 받는 돈은 적게 느껴진다. 돈을 많이 번다는 의사들도, 편의점 알바조차 내가 투자한 것에 비해 보상은 적다고 느낀다. 돈 많이 주면 열심히 한다고 말하는 인간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대충 한다. 오히려 대충 하는데도 돈을 많이 받으니 너무나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꿀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떠들어 댈 것이다. 프로의 태도여야 언젠가 돈을 많이 받을 가능성도 생긴다. 인과관계가 거꾸로 돼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프로 의식이 항상 많은 보상을 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분야는 그런 정신으로 해도 돈이 되지 않는다. 박사 학위까지 따도 비주류 분야는 자리가 없으면 시간 강사를 전전해야 한다. 정교수가 논문을 많이 쓴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좋은 재료와 장인정신을 고집하는 식당만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가게는 손해가 나거나 망할 수도 있다. 자기만의 기준을 고수하는 일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꽤나 큰 비용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지는 않아도. 프로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꾸준하게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멋있다. 나는 돈이나 명성을 얻는 것보다도 멋있는 사람 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은 참 멋있다는 얘기 듣기는 쉽지 않다. 그런 흔치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프로 의식을 지닐 만한 충분한 이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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