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당구장에 처음 갔다. 자의로 가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하도 가자고 해서 끌려가다시피 했다. 할 줄도 모르고 재미도 없어 보이는데 게임비는 한 시간에 6천 원. 나는 대학 입학을 기다리며 시급 5천 원을 받는 알바를 하고 있었다. 한 시간에 6천 원? 차라리 피시방 6시간을 가고 말지. 어쨌든 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당구장에 들어갔다.
흡연실이 설치된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의 당구장은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곳이었다. 피시방은 흡연 비흡연 구역 구별이라도 있었지만 당구장은 그런 것도 없다. 바로 옆에서 아저씨들이 담배 연기를 뿜어낸다. 짜증이 나지만 친구의 가르침을 받아 가며 어설프게 자세를 잡아본다. 공 하나 맞추기도 쉽지 않다. 딱히 재밌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묘한 끌림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끌림 때문에 친구들과 몇 번 더 당구장에 갔다. 이후로 나는 혼자서도 당구장에 가는 인간이 돼버렸다. 학교 오가는 지하철에선 쿠드롱, 야스퍼스 같은 정상권 선수들의 세계 대회 영상을 봤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를 당구장에 데려간 친구들보다 잘하게 됐다. 이젠 고등학교 때부터 당구를 치던 다른 애들과 치기 시작했다. 물론 졌다. 하지만 번번이 져서 내기 값을 내면서도 그렇게 재밌었다.
요즘은 당구를 칠 사람도, 칠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는 왜 당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다. 싫다는 것을 강제로 접했는데 왜 재미를 느낀 걸까. 당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롤이라는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군대에서 다 같이 외출 나가면 피시방에 갔다. 동기든 후임이든 가릴 것 없이 이 게임을 했다. 팀 게임인데 혼자 다른 거 하기도 뭐하고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역시 재미도 없어 보였고, 당구보다도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이렇다 할 첫 끌림도 없었다. 근데 어느새 혼자서도 즐기게 되었다.
원래 그런 거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는 거고, 갑자기 좋아질 수도 있는 거지 이유가 있어야 돼? 하지만 유야무야 넘어가면 이런 상황에 부딪힐 것만 같다.
"이거 해보자."
"그건 하기 싫은데?"
"왜? 해보면 좋아할 수도 있잖아."
"..."
"그리고, 싫어도 계속하면 좋아질 수도 있어."
저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안 해본 건 모른다는 불가지론자가 되든지, 모든 경험은 다 좋다는 경험론자가 되어야 것이다.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최고로 좋아하는 것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던 것만 하느라 지나가 버린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브라질 안 가봤는데 왜 가기 싫어? 그런 데가 진또배기 여행지야.' 꼰대 같은 말이지만 방어할 방법도 마뜩잖다. 안 해봐서 모르니까.
영화를 수백 편 보면 좋아하는 장르, 감독, 배우, 스타일을 깨닫게 된다. 스시도 몇 번은 먹어봐야 자신이 좋아하는 네타, 샤리를 판단할 수 있다. 스피커도 이것저것 들어봐야 좋아하는 소리를 알게 된다. 처음부터 곧바로 고급 스시를 먹고 고급 스피커를 사버리면 오히려 만족감이 생각보단 낮을 수 있다. 옷도 그렇고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까지 마찬가지다. 경험은 취향을 만들고, 취향은 안목을 만든다. 안목은 좋은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싫든 좋든 이것저것 경험을 많이 하면 좋다는 건가. 가역적이고 리스크가 적은 경험은 해보는 편이 나은 것 같다. 당구장에 한 번 가보는 것은 겨우 몇 천 원과 한 시간이 드는 일이다. 그 경험이 수년간 혹은 평생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안 맞으면 안 하고 안 가면 그만이다.
다만, 리스크가 적은 것은 영향력도 크지 않다는 뜻이다. 당구는 안 해봐도 인생에 별 영향이 없다. 오히려 작은 경험을 하는데 정신이 팔리면 크고 결정적인 경험을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대학에 가는 것은 25살만 돼도 부담스러운 결정이다. 결혼은 35살만 넘겨도 어려워진다. 작은 베팅을 일삼다 보면 큰 베팅이 어려워진다.
아이러니한 점은 큰 베팅일수록 경험도, 취향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 선택은 불가역적이고 리스크도 크다. 아이를 낳는 일이 대표적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을 가야 하지만, 싫다고 돌이킬 수도 없다. 물론 좋았을 경우의 보상도 크다.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성공한다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거다.
사업을 하거나 특정 직업군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일도 비슷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선택한 곳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안정적인 뒷배가 있지 않고서야 이것저것 재고 따질 여유는 대부분 없다. 이 직업 몇 년 해보고 바꾸고 그런 식으로 되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며 회사를 옮길 뿐이다. 19살에 사관학교를 선택하면 보통은 평생 군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19살은 그런 선택을 하기에 적합한 나이인가.
결혼은 보편적인 제도지만 모든 결혼은 개별적이다. 좋을지 어떨지 모르는, 취향도 모르는, 여태껏 해본 적도 없는 선택으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다. 요즘은 결혼도 출산도 잘 하지 않는다. 큰 베팅을 걸기에는 옛날보다 위험한 세상이 된 걸까 사람들이 겁쟁이가 된 걸까. 아니면 인생이 원래 운에 맡겨지는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게 된 걸까.
나도 그렇고 누구나 이미 결정적인 때가 몇 번은 지나갔을 것이다. 몇 번 선택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은 생각보다 많다. 어쩌면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인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꿀 여지는 있다. 충동적인 변화로는 상황이 더 나아질 확률이 낮고 용기가 없을 뿐이다.
앞으로도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선택지들이 놓여있을 것이다. 도망칠 수도 없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고 그게 미싱 링크(Missing link)가 되어 평생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나를 알 수 없는데 뭔가 골라야만 하는 상황. 그런 순간에,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