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건축에서 발견한 것들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을 읽고

by 엡실론

지금까지 의와 식에는 신경을 꽤 썼지만, 주에는 그만한 관심을 기울여보지 않았다. 무엇이 맛있는 음식인지, 어떤 옷이 예쁜지는 곧잘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라는 집에 대해서, 건축물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의와 식만을 생각하기에도 시간은 짧았던 걸까.

어쩌면 주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게 아닐까. 의와 식은 무리하면 고급을 맛볼 수 있다. 주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멋들어진 단독주택은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 그래서 생각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고급 주택은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일도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잊고 사는 셈이다. 빨간 알약은 매트릭스의 주인공이나 먹는 거니까.


SIMS4, Electronic Arts


건축에 대해서는 급식 시절에 심즈(Sims)라는 게임을 하며 느낀 게 전부다. 어떻게 해야 내부 동선이 좋고 멋있는 집을 지을까. 그러면서도 독창적일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건축가가 된 양 고민을 했다. 집 짓는 게 주된 게임은 아니었지만 집을 지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땐 나중에 진짜 건축가가 되면 재밌겠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게임으로 얻는 즐거움은 유통기한이 짧다. 심즈가 내 컴퓨터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건축에 대해 생각해 볼 일도 사라졌다. 나는 분석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취미가 있지만, 그런 습벽도 건물을 탐구하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미학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아름다움이란 대칭성과 조화에서 오지 않을까 정도를 떠올렸다. 그게 건축물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였다.

그렇게 살다가 <행복의 건축>을 읽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건축에 대해 할 말은 참 많았구나. 내가 건축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지적 게으름일 뿐이었다. 부지런한 자는 300페이지에 달하는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 놓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영감이 떠오르는 부분, 다시 읽어도 좋은 부분엔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다. 책장을 얼마 넘기지도 않았는데 붙이고 또 붙였다. 이런 책은 흔치 않다.

이 책은 묻는다. 집의 의미란 무엇인가. 집은 단순히 비를 피하고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이면 그만인가.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절제에서 오는가 과시에서 오는가. 질서와 독창성 사이에서 무엇을 중시할 것인가. 질서 속의 무질서는 어떻게 조화되는가. 건축 양식은 왜 변화하는가. 질문은 끝이 없다. <행복의 건축>을 읽는 것은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리는 과정이다. 머릿속에서 불꽃놀이가 일어난다.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 hoteltheplaza.com
© 서울경제


서울 시청 앞에는 더 플라자 호텔이 있다. 시청에 갈 때마다 나는 이 건물을 유심히 보게 된다. 왠지 모를 끌림이 있다. 앞에서 봤을 때의 격자무늬는 규칙적이다. 어디서나 보이는 네모반듯한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까이 다가서면 벽면의 올록볼록한 입체감이 느껴진다. 질서 안에서의 미묘한 변주다. 외관의 금색과 녹색 빛깔은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준다. 모든 요소에 건축가의 세심한 고민이 녹아 있을 테다.

한 건축물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정보를 주는가. 작가는 건축 양식이 사회의 결핍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겨울은 봄을, 여름은 가을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는 결여된 이상을 갈망한다. 아름다움과 멋은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에서 느껴진다. 도시를 시골처럼 만들어 보려는 근래의 시도들도 그런 연유에서 나왔을 것이다. 고층 전망을 이미 소유한 자는 목가적인 저층 건물의 아름다움을 계획한다. 소유하지 못한 자는 아파트 공화국을 꿈꾼다.


E23 745i, BMW, 1979
Hermès, Spring 1999 Ready to Wear Collection Runway ©vogue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은 비단 건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인간의 모든 창작물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역사와 정체성을 지닌 브랜드는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40년 전의 BMW를, 20년 전의 에르메스를 보는 것은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학적 요소들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 맞아떨어질 때 그 대상은 클래식이 된다. 소박하기만, 고급스럽기만, 기능적이기만, 절제되기만, 자유분방하기만 하다면 금세 질린다. 영속성을 가지려면 그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국 대중음악 대부분은 론도 형식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틀에서 벗어난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건축가 유현준은 학교가 교도소 같다고 비판한다. 교사와 고위 공무원은 여전히 통제를 위한 건축을 원한다.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선 차이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학생의 시선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신도시에서조차 건축가의 시도는 끝내 좌절됐다. 새로울 것 없는 신도시가 또 하나 탄생한다. 현실은 복잡하게 섞여있고 단일한 관점에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동시에 복잡성을 수용하는 사회는 아름답다. 우리 사회는 변주를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 건축이든 패션이든 음악이든.


유현준 교수의 이상이 담긴 학교 스케치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책을 읽다 보면 인간도 하나의 개별적인 예술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주변과 조화로우면서도 어떤 독창성을 가질 것인가. 규칙성과 독창성이 공존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잠깐 빛나고 끝나는 것이 아닌, 클래식이 되는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어쨌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사람들은 모두 건축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건설해 나가는 중이다.

나는 어떤 이상을 투영해 건축하고 있는가. 전통의 답습인가, 엔지니어의 기능주의인가, 주류 속의 비주류를 꿈꾸는 또 다른 무엇인가. 알랭 드 보통은 건축에 대해 묻고 미학에 대해 묻는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결국 건축의 실패는 마음 읽기의 실패다.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 아니겠는가.

끈기 있는 건축가는 찰나의 기쁨과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기어이 그것을 논리적 설계도로 바꾸어 놓는다. 그때 비로소,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했던 욕구를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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