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 궁금할 정도로 많이 쓰는 말이다. 하긴 누가 처음 한 말인지 누가 한 말인지 뭐가 중요할까. 아인슈타인 급 인재가 아닌 이상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삼일절만 되면, 광복절만 되면 이런 문구를 즐겨 쓴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얘기할 때도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근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왜 미래가 없을까. 미래는 시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가만히 있든 뭘 하든 밤이 되면 잠이 찾아오고 아침엔 해가 뜬다. 미래는 파도가 치듯 실시간으로 꼬박꼬박 들이닥친다. 역사를 잊든 말든 미래는 찾아올 것이다. 좋은 미래를 말하는 게 아니냐고? 좋은 미래란 무엇인가. 조선 말기 위정자들도 좋은 미래를 바라기는 했을 것이다. 결국 나라를 뺏겼다. 그런 망조 든 나라의 백성들은 조선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그렇게 통탄할 일이라고 여겼을까. 그 와중에 좋은 미래를 그리던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
민족이란 단어도 아리송하긴 마찬가지다.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나는 정의할 수 없다.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같은 땅에 살았으면 같은 민족인가. 그렇다면 어느 시대부터 산 사람이 같은 민족일까. 고구려 기준으로 보면 지금 중국 인민도 일부는 우리 민족이 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조선인과 고려인, 발해인과 같은 민족이 되는가. 삶의 모습으로 나눌 수도 없다. 이미 우리의 삶의 모습은 미국인과 일본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과 비슷한 건물에 살고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옷을 입는다. 외국인도 귀화를 하면 한국인이 되는 세상이다. 이들도 한민족인가. 민족은 쉽게 쓰는 단어지만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아까 우리나라가 아니라 굳이 조선이 넘어갔다고 말한 이유는 불과 한 세대 전 조선도 대한민국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연계성으로 민족을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인과 조선인은 다르다. 왕을 숭상하고 순종 인산일에 모여 곡을 했던 조선인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눈물을 쏟는 북한 주민들이 차라리 조선인과 비슷할 것이다. 뭐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역사나 민족을 몰라도 미래는 온다. 역사는 그럼 왜 배우는 것일까. 나는 인간상을 보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수백 년 전 과거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지능과 사고방식이 다르지 않다. 환경이 달랐을 뿐이다. 사회과학 모델을 만들 듯 현상의 본질만을 남기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인간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 그것을 배워야 한다. 그걸 토대로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있다. 예측이 좋은 미래를 담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상황에서 과거와 동일한 결론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이완용은 매국노다.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완용이 미국에서 영사 생활을 하고, 서대문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협회 장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독립협회장을 하던 사람이 왜 나중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을사오적이 어쩌고 조약 내용이 어쩌고는 부수적인 문제다. 공교육은 부수적인 문제에 집착하고 그런 걸 외우게 만든다. 우리는 이 시대의 이완용을 미리 알아챌 수 있을까.
이승만 정권을 제외하고 5.16과 12.12 사태는 군부가 일으켰다. 독재 대부분의 기간은 군부가 문제였다. 그럼 다음 독재도 군부에서 일어나지 않을까?우리나라 독재 정권에서는 반드시 투표 조작이 일어났다. 그럼 투표 조작도 안 했는데 독재는 아니지 않나? 투표 조작은 독재정권의 필요조건이니까. 이 정도로 인식하면 안 배우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당하고 인식하면 늦다. 히틀러를 제 손으로 뽑은 독일 국민들도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