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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0의 세계,10의 세계

by 엡실론

0은 5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5가 무엇인지 느낄 수 없다. 마찬가지로 5는 10을 알지만 느낄 수 없다. 다만 0과 5의 차이보다는 덜하다.

인지의 한계를 벗어나는 구간도 있다. 저티어 구간은 평생 프로를 만날 일도 없고, 프로의 실력과 핵을 구별할 수도 없다. 0은 7까지는 인지한다. 운 좋게 주변 사람이 7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10의 세계는 감지할 수조차 없다. 0에게 10의 세계는 믿음의 영역이다. 인간이 신을 인지하지는 못해도 믿는 것처럼.


0과 5는 공존하기 어렵다. 5는 4~6과 어울려야 편안하다. 드물게 5를 이해할 수 있는 1도 있을 것이다. 다만, 드물기에, 그런 사람을 찾기는 어렵고 굳이 찾아야 할 이유도 없다.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면 결국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금언대로 세상은 돌아간다. 맛집도 입맛이 비슷해야 같이 다니는 거고 게임도 실력이 비슷해야 재밌다.

그래서 아무리 장삼이사라도 끼리끼리 모이면 웃음꽃이 피는 것이다. 군대에선 여자 얘기, 주식 얘기, 골프 얘기로 매일 마스터 클래스가 열린다. 군대가 아닌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다. 온라인 세상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런 걸 보면 웃음이 난다. 딱 그 수준인가 보다.

다른 세계관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방법은 5가 3을 이해해 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래갈까. 3과 5가 만났지만 3이 어느 순간 8이 되고 5는 그대로라면 결국 누구 하나는 떠나고 싶을 것이다. 3은 그대로고 5가 7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사람이 얼마 남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지금 자신의 세계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억지 공존은 언젠가 끝이 난다. 운 좋게 두 세계가 겹치는 잠깐이라도 충분히 즐기면 그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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