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그 포스트시즌 총평
월드시리즈에 출전하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이하 필리스)로 정해졌다. 조금은 의외의 팀이었다. 물론 시드 순으로 맞붙는다고 해도 변수를 생각해야 되지만 전력차라는 것은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100승 팀이 3팀이나 즐비하는 내셔널리그 디비전은 초고난도라 할 수 있었고 첫 상대부터 가을좀비라 불리며 전통적으로 가을에 강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하 카디널스)였다. 이들 앞에 선 고작(?) 87승의 필리스는 앞길이 막막해 보이기만 했다. 심지어 올해부터 와일드카드 시리즈가 새로 생겨서 단판전이 아닌 3전 2선승제로 적어도 1, 2선발을 소진한 상태에서 올라와야 하는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강력한 타선의 힘으로 난적들을 무찔렀다. 작년 같았으면 가을야구는커녕 벌써 시즌을 접고 내년 시즌을 대비하고 있을 판이었다. 언더독들이 업셋을 이룩하려는 기세가 강했지만 1, 2번 시드인 휴스턴과 양키스가 맞붙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예상대로 흘러간 아메리칸리그와는 달리 이변에 이변을 거듭하는 내셔널리그 포스트시즌을 관통하는 명제가 있다면 바로 ‘내일은 없다’ 일 것이다.
투수 운용은 페넌트레이스에서도 중요하지만 포스트시즌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다만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전자는 긴 호흡의 마라톤이라면 후자는 100m 달리기처럼 짧고 굵게 가야 한다. 오래도록 고른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것과 단기간 내에 무리가 따르더라도 강한 퍼포먼스가 중요하다. 그래서 투수 교체를 생각보다 일찍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내셔널리그의 가을은 타이트하게 가기보다는 좀 더 내일은 보려는 안일함이 보이는 사례들이 많았다.
1. 쇼월터는 슈어저를 내고 왜 또 디그롬을 낸다고 하지 않았을까?
뉴욕 메츠(이하 메츠)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이하 파드레스)의 와일드카드 시리즈 선발투수가 발표되었다. 파드레스는 예상대로 다르빗슈, 스넬, 머스그로브 선발 3대장을 차례로 공표했다. 그러나 메츠의 선발 발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2차전 선발에 ‘or’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1차전 슈어저와 3차전 크리스 배싯은 고정이었지만 1차전 승패 여부에 따라 2차전에 디그롬일지 크리스 배싯일지 미정 상태였다. 이는 디그롬을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선발로 내겠다는 자신만만한 쇼월터의 계산 하에 나온 수였다. 파드레스를 이긴다는 전제 하에 내린 결정이었고 묘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었다. 파드레스 선수들과 팬은 당연히 격분할 수밖에 없었고 이 악물고 상대하게 되었다.
삼국지에서 주유는 ‘하늘은 주유를 내고 왜 또 제갈량을 내었는가?’ 라며 호적수를 둔 대상에 대해 질투를 하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주유와 제갈량은 나라가 달랐기에 생겨난 일이었지만 쇼월터의 경우는 달랐다. 시즌 전부터 올해는 물론 역대 최고의 원투펀치가 될 수 있는 슈어저와 디그롬을 같은 팀에서 보유하고 있는데 굳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 더구나 슈어저 같은 경우 가을야구 첫 경기에서 부진한 기억이 더 많았다. 작년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2016년 디비전 시리즈는 물론 우승을 했던 2019년 와일드카드 결정전도 스트라스버그가 호투하지 않았다면 떨어질 뻔했다.
이러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괜한 도발은 오히려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 작년 보스턴과 탬파베이 디비전 때 탬파베이가 1차전 팝콘을 먹으며 상대방의 플레이가 지루하다고 도발했고 이후 보스턴이 탬바페이를 꺾어버렸다. 마찬가지로 다저스와 자이언츠 디비전 때 AJ 폴락이 알렉스 우드의 공을 잘 칠 수 있다고 했다가 무안타로 그쳤고 1 대 0으로 그 경기를 내줬다.
2. 로버츠는 에반 필립스를 아꼈다가 X이 되었다.
때는 LA 다저스(이하 다저스)와 파드레스의 디비전 4차전이었다. 1승 2패로 전적에서 뒤져있는 상태에서 1 경기만 져도 탈락하는 일리미네이션 경기에서 다저스는 침착했다. 2년 전 2020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이하 브레이브스)에게 1승 3패로 몰렸다가 역스윕으로 이긴 후 기세를 몰아 월드시리즈까지 우승한 경험이 있었고 작년에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하 자이언츠)에게 1승 2패로 밀렸다가 뷸러의 호투와 슈어저의 마무리로 이긴 얼마 안 된 싱싱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저스를 이끄는 로버츠 감독의 일리미네이션 경기 승률도 11승 5패로 높았고 선수들도 이 경기의 중요함을 깨닫고 파드레스를 몰아쳤다. 선발 타일러 앤더슨은 이전 다저스 선발들과 다르게 5이닝을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았고 타선도 머스그로브를 두들기며 3 대 0으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이대로 5차전까지 끌고 간다면 다저스는 1선발 훌리오 유리아스를 다시 내세워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고 파드레스는 123선발을 모두 소진한 상태로 1차전 두들겨 맞은 클레빈저 외 벌떼야구로 마운드를 막아야 했기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문제는 7회에 터졌다. 철벽 불펜으로 마무리하려던 다저스는 토미 케인리를 올렸으나 흔들렸다. 3점 차는 안심할 수 없는 점수였고 이전 이닝에 무사 만루를 1 득점을 끝낸 터라 불안감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알몬테를 올렸으나 실점. 좌타자인 크로넨워스에 맞서 좌완 불펜인 베시아를 올렸으나 소토의 산책주루와 더불어 적시타를 맞으며 실점. 3 대 0 경기가 빅이닝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3 대 5로 뒤집혔다. 흐름이 파드레스 쪽으로 쏠렸고 경기도 그대로 끝나버렸다. 다저스의 가을도 마쳤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왜 불펜 에이스인 에반 필립스를 올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반 필립스의 시즌 하이라이트는 8월 자이언츠와의 경기였다. 이틀 연속 만루에 무실점으로 막은 적이 있었다. 작년 켄리 잰슨이 불펜에 이틀 연속 불을 지른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작년 트레이넨처럼 핀치 상황에서 가장 강한 투수를 그다음 이닝에서 패전조처럼 너무 허무하게 소비했다. 당연히 기자회견에서 에반 필립스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로버츠는 9회 마무리에 쓰려고 했다고 답변했다. 그야말로 속담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3. 멜빈은 왜 쇼월터와 로버츠를 합친 괴물이 되었을까?
필리스는 오랜만에 올라온 가을야구에서 신바람을 내고 있었다. MVP 후보 1, 2위로 “예상”되는 골드슈미트와 아레나도를 보유한 카디널스를 “확정”된 홈런왕 카일 슈와버와 MVP 2회 “수상”한 브라이스 하퍼로 찍어 누르며 디비전에 진출했고 돌아온 아쿠냐 주니어와 투타 모두 신인들이 연달아 터지며 장기계약까지 맺으며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리던 브레이브스를 3 대 1로 손쉽게 올라왔다. 파드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100승을 한 두 팀을 연달아 꺾으며 기세가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트레이드 패작으로 여겨졌던 소토, 드루리, 조시 벨이 기대했던 모습으로 돌아오고 그리샴, 김하성 등 기대 이상의 선수들이 터져 나왔다. 언더독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투수전일 때는 투수전, 난타전이면 난타전 비슷한 흐름으로 팽팽하게 흘러갔지만 필리스가 홈런으로 한 끗 더 달아났다.
1승 2패인 상황에서 4차전은 파드레스가 기세를 올렸다. 6회 부족했던 홈런을 후안 소토가 쳐주면서 6 대 4로 달아났다. 이대로 마르티네즈-수아레즈-헤이더 철벽 불펜을 소환한다면 시리즈를 동률이 될 수 있는 분기점이었다. 그런데 멜빈은 4회에 점수를 주고 5회에도 홈런을 맞은 머나야를 그대로 기용했다. 뒤늦게 가르시아로 바꿨지만 이미 늦었고 이후에 카일 슈와버와 리얼무토의 홈런을 차례로 맞으며 경기를 내줘버렸다.
다음날 5차전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도밍게스의 폭투로 파드레스가 3 대 2로 앞서가고 있었다. 전날의 착오를 의식했는지 바로 수아레즈를 올리며 응수했다. 그러나 상대는 브라이스 하퍼였다. 4차전에서도 2루타를 두 방이나 날리며 타격감이 최고조에 올라있었다. 헤이더의 이름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2이닝을 맡겨야 하는 부담감이 있지만 3일을 쉰 상태기도 하고 가장 큰 위기에 올라와도 무리는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라이스 하퍼는 홈런을 날리며 자신이 mvp임을 입증했고 헤이더는 그대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퇴장했다.
메츠와 다저스라는 두 거함을 침몰시킨 멜빈조차도 이 두 팀의 감독을 답습해버렸다. 필리스와의 4차전에서 불펜을 아끼는 모습은 자신이 이겼던 디비전 4차전의 영락없는 로버츠 모습이었다. 경기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을 반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5차전은 시간을 거슬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쇼월터 감독과 닮았다. 당시 16년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연장전에서 최고의 마무리 잭 브리튼을 아끼다가 끝나버린 것처럼 헤이더를 내지 않다가 경기를 끝나버렸다.
물론 이것은 결과론일 것이다. 지지 않았다면 위의 세 경기 모두 신의 한 수가 될만한 기점이었을 것이다. 월드시리즈를 우승하기 위해서는 11승이 필요하다. 짧다고는 하지만 각 시리즈마다 최대 5경기, 7경기, 7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을 생각해 무작정 힘만을 쏟을 수는 없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적절함이다. 순리대로 가야 하지만 변칙을 섞을 수밖에 없는 갈림길에 놓인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명장 놀이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은 없다라는 명제는 적어도 이번 내셔널리그 포스트시즌을 빌어 한 번쯤 되돌아볼 말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