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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Mar 02. 2021

아버지의 빈자리

0 이라는 숫자가 깜빡거렸다.


2021년 2월 24일 오후 4시 45분, 89세를 일기로 아내와 아들, 며느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몸에서 호흡과 맥박, 혈압이 천천히 사라져서 기계의 그래프가 멈추고, 0 이라는 숫자가 깜빡거렸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한국 전쟁을 겪었고, 직업군인과 사무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이런저런 인생의 굴곡을 지나 시골로 내려 가 작은 주유소를 팔십까지 운영하셨다. 매일 아침 한겨례 신문을 읽는 것을 취미이자 낙으로 삼던 양반, 팔십이 될 때까지 주유소 회계 장부를 반듯한 필체로 일일이 직접 정리하고, 주유트럭을 몰고 공사장 배달을 하실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인하셨던 분.


주유소 일에서 은퇴한 후 통풍, 당뇨병, 류마티스 관절염, 척추협착증, 전립선암, 신장염 같은 노화로 인한 각종 질병들을 견뎌야 했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맛있게 드셨고, 티브이 드라마와 아들이 나오는 방송을 꼼꼼하게 챙겨 보시고 논평하기를 좋아하셨다. 필체가 좋다는 말을 평생 듣고 사시다가 말년에 직접 쓰신 붓글씨를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하셨다. 당최 필요하지도 않는 최신형 핸드폰과 노트북을 사들여, 고작 고스톱 앱만 이용하시면서도 성능 좋다고 자랑하시던, 허세기 충만하던 양반. 며늘아 대신 언제나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신 분. 통풍과 관절염으로 걷는 것이 불편해도 나들이 좋아하셔서 기회만 되면 장거리 여행을 따라 나서던 분. 스스로 밥 한번 지으신 적은 없지만 빨래만은 도맡아 하여 군복처럼 반듯하게 개어 놓으셨다.      


시어머니는 장례기간 동안 음식도 거부하며 내내 많이 우셨다. 남편은 가끔 울었고, 나는 어쩐지 눈물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수년 동안 시아버지의 건강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작년 말부터는 곡선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바닥을 치는 듯 보였다.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당신 숨결이 남은 거의 마지막까지도 타인에게 의탁하지 않고 존엄을 유지하며 생활하셔서 그런지 임종을 지켜보는 내 마음에는 슬픔보다는 안도와 편안함이 느껴졌다.


임종 전까지 꼭 일주일을 중환자실에 계셨는데, 그 사이에 몸은 너무도 작아지고, 손발 끝은 새까맣게 타들어가서 버려진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의식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도 병원은 명백히도 불필요한 검사와 시술을 아버지의 몸에 시험했고, 각종 영양제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봉지를 포도알처럼 매달았다. 입원 첫날, 아직 의식이 또렷한 상태였을 때 아버지는 목이 마르니 제발 물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검사를 위해서 금식을 요구받았다. 평생 찬물 아니면 마시지 않던 분인데, 마지막에 좋아하시던 차가운 보리차 한잔 마시지 못하셨다. 그 때 물을 드리라고 조금 더 강하게 말하지 못한게 후회된다. 24시간 형광등이 환한, 시장바닥 같은 중환자실에서 시아버지가 더 이상 무방비하게 묶여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지를 호국원에 모시고 온 저녁, 대보름 달이 시골집 앞마당을 우유 빛으로 채웠다. 괴산 호국원에도 같은 달빛이 가득하리라고 생각 하니 위로가 되었다. 아버지 감사했어요. 이제 편안히 쉬세요,라고 달을 향해 말해 보았다.


아버지가 늘 앉아서 티브이를 보던 소파 자리가 움푹 내려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고정석이던 소파의 가죽이 많이 헤지고 늘어난 것도 보였다. 겨우내 쓰시던 털모자는 거실 소파 위에, 여전히 새하얀 운동화 한켤레가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버지의 지팡이, 붓글씨 도구들,  창호지에 써서 현관문에 붙여 두신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글씨가 아직 뚜렷하다. 새봄이 되었으니 상스럽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 그 글을 쓰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 집 문에도 붙혀 두라고 보내신 글은 아직도 보내신 그대로 내 가방에 들어 있다. 매년 보내주시지만 건성으로 지나쳐버렸다. 가방에 들어 있는 글이 당신이 써주신 마지막 글이 되었다.


아버지가 좋아해서 시댁의 냉장고에는 겨우내 딸기가 있다. 중환자실로 실려 가시기 전날 시어머니가 사두신  딸기는 그 사이 시들고 물러 있었다. 찬물에 딸기를 씻어 꼭지와 상한 부분을 떼어내어 접시 가득 담았다. 누구도 선뜻 딸기를 집어 들지 못하였고 달콤한 딸기 향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 당신이 써주신 '입춘대길 건양다경' 내년에는 우리집 대문에 꼭 붙이고 상스러운일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편안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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