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들 2
퇴근길에 광화문에 걸린 초승달을 보았다. 보름달이 큰 언니 같은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약간 달무리가 진 초승달은 스물두 살 막내 동생처럼 청초하면서도 귀여운 것 같다. 함께 걷던 친구는 이건 꼭 찍어야 한다며 아이폰을 꺼내 달을 찍는다. 늦가을 차가운 밤공기와 대비되어 초승달이 유난히 희다.
신호등 앞에 서서 넋을 놓고 초승달을 바라고 있는데, 건너편 경복궁 담장 앞에서 젊은 남녀 한쌍이 서로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달빛과 어울려, 낭만적이네,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들로부터 몇 미터 옆으로 또 다른 포옹 커플이 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이 동네.. 오늘 무슨 포옹 데이야 하면서 농담을 하는데, 바로 우리 옆으로 또 다른 포옹 커플이 보였다. 이건 뭐야 뭐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찰나, 신호등 주면 삼사 미터 간격으로 두서너 쌍의 포옹 커플이 더 보인다.
오늘이 무슨 포옹 데이가 아니라면 혹시 중년 여성들을 놀라게 하는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건가.. 이건 너무 부럽잖아. 친구랑 나는 표도 못 내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초승달이 소금처럼 흰 빛을 흩뿌리는 신비한 밤이다. 펜데믹 시대라도 괜찮다는 다정한 위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