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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Nov 26. 2020

허밍버드는 자몽나무에서 산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들 1

해가 뜨자마자 숲으로 달려갔다. 햇살은 좋았으나 공기는 차가웠다. 숲의 공터에서 가져간 뜨거운 커피와 카스테라를 먹는데 검은 몸에 양 날개쪽에 진한 옥색 줄무늬가 있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고작 서너 발자국 앞에 내려앉아 빤히 나를 쳐다본다. “빵 좀 나눠 먹자”이러는 것 같다.  빵을 조금 떼어내 던져줬더니 잠깐 경계를 하다가 잽싸게 빵을 물고 날아갔다.


그리고 몇 분 후에는 다른 종류의 새가 또 한 마리 날아왔다. 이번에는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색 털의 뱁새 같았는데, 나를 또 빤히 쳐다보며, ‘새, 차별하면 안 되지"이러면서 빵을 또 달란다. 이번엔 빵을 좀 많이 떼어내서 근처에 뿌려 주었더니 욕심내지 않고 딱 하나만 입에 물고 간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여러 마리의 뱁새들이 근처로 날아왔다. 아무래도 조금 전 녀석이 숲 친구들을 전부 불러 모아 온 것 같다.

미국에 있을 때, 허밍버드를 처음 보고 새라는 존재가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다. 애리조나 주 얼의 집 뒷마당에는 키 큰 남자 만한 자몽나무가 2그루 있었고, 그곳에 한쌍의 허밍버드가 정주했다.  그 새들은 허밍버드 중에서도 몸집이 더 작은 종류였는데, 몸무게가 3그램도 안되고, 딱 엄지 손가락 만했는데, 어찌나 빨리 나는지 형상은 안 보이고 쉑쉑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만 들였다.


마침 3월이라, 노란 자몽이 나무 가득 달려 있었고, 은은한 자몽향과 허밍버드의 붕붕 거림이 마치 모지스 할머니 그림 속 풍경같이 아름다웠다. 아침에 자몽을 따서 주스를 만들어 마시곤 했는데, 우리가 자몽을 따러 갈 때마다 자기 것을 지키려는 듯 화를 내며 나무 주변을 지그제그로 섹섹 소리 나게 날아다녔다.

도시에 살면서 주말 산책이 아니면 새를 거의 볼 수 없지만, 가끔 오늘처럼 새를 만나게 되면 자몽나무에 사는 허밍버드가 떠오르고, 투산에서 얼 부부와 보냈던 휴가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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