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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Nov 06. 2020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해맨다

유년의 기억을 복원하는 일

다섯 살 무렵, 혹은 여섯 살 즈음의 어느 볕 좋은 날, 엄마와 남산 중턱에 있던 집을 오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한 장면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 날의 기억인 듯하다. 엄마는 장바구니를 팔에 끼고 가파른 남산 길을 걷고 있고, 나는 엄마가 신은 하얀 양말과 운동화, 그 위로 드러난 맨살의 종아리를 본다. 엄마가 나 보다 한참 앞질러 언덕을 올라가는 듯하니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뛰다시피 엄마를 뒤쫓고 있다. 엄마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 삐죽 나와 있는 야채들, 그 틈으로 반쯤 종이에 싸여 있는 대파 한 단, 어쩐 일인지 엄마는 파 잎 하나를 따내서 풍선처럼 부는 시늉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파가 아니었을 것 같다. 파를 부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는 그 장면이 신기해서 엄마 보고 계속해보라고 한다. 엄마는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깔깔 웃는다.

글을 정기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몇 년 전부터였을 것이다. 이런 류의 오래된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그때마다 나는 그 기억들을 받아 적어 보곤 했다. 쓰고 싶은 유년의 기억 목록이 점점 늘어 가는데, 어느 날은 약간의 회의감에 젖어들게 된다. 도대체 이제 와서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글로 쓴다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이 생기는 것이다. 나만의 기억이므로 어딘가에 공개할 수도 없고, 간혹 내가 쓴 글의 기억이 너무 좋아 공개글로 올려볼 때면  ‘그런데 어쩌라고?’ 하는 누군가의 조소가 들리는 것만 같기도 하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는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책이다. 오늘 오후 내내 이 책을 붙잡고, 읽다 졸다를 반복했다. 낮잠 속에서 나는 남자처럼 오래전 기억을 찾아 헤매는 듯 보였다. 꿈의 내가 찾는 과거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기억하는 과거란 결국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의 현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케케묵고, 사소하고 먼저처럼 밀도 없이 가벼운 기억들이 없다면 나는 나일 수 있겠는가? 그 과거의 기억의 너울 위에 나라는 존재가 서있는 것이지 그런 기억이 완전히 증발하면 나 역시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가닿았다. 그러다 다시, 과거란 그저 지나간 것일 뿐, 돌이킬 수 없는 것, 연연하면 안 되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쓰는 행위를 통해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일은 결국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유년의 나를 기억하고 글로 복원해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의 오늘은 과거의 수많은 날들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을 쓴다는 것은 그래서 과거를 쓰는 것이고 과거를 쓴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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