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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Mar 09. 2021

세네갈 무용수가 알려준 비밀

바오밥 나무 평야에서 춤을 추듯

아프리카 세네갈에는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모여 춤을 추는 무용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그 무용학교 프로그램 중에 묵언 과정이 있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절대로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춤을 출 때도 음악을 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 상태로 일주일 정도 춤을 추다 보면 신비로운 악기 소리가 귀에서 조금씩 들린다고 해요. 그 악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다 보면 그 소리가 점점 분명해져서 나중에는 자신이 묵언 중이라는 사실도 잊는 신비한 순간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무용수들의 선생님은 그 신비를 이렇게 설명한대요.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각자의 악기가 있어서 그 악기가 연주하는 음악이 마음에 항시 흐릅니다. 우리가 평소에 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다른 더 큰 소리들 때문이죠. 귀 기울이면 누구나 마음의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 무용학교 근처에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가 가득한 평야가 있대요. 그 큰 나무 아래서 무용수들이 각자의 마음의 악기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야기는 정말 많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신비하고 어쩐지 눈물겹지요.


우리가 글을 쓰려고 애쓰는 몸짓은 내면의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춤추기와 닮은 것 같아요.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어떤 마음들을, 일상의 소음들에 묻혀버린 그 미세한 떨림을 몇 줄 글로 표현해 보려는 나의 애씀은 마음속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몸짓만큼이나 신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쓰기는 바오밥나무 아래서 춤추는 무용수처럼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반면 글쓰기는 내 삶을 이어가게 하는 ‘고약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와락 끌어안지도 확 떠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부여잡고, 숙제를 밀린 일요일 저녁 밤처럼 나를 불안하고 후회하게 만듭니다. 그 고약한 불안과 후회가 나를 글쓰기에 매어두는 힘입니다.   


오늘 어떤 강의를 준비하면서 노트북에 저장해 둔 자료를 뒤적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써놓은 글 더미들을 클릭해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죠. 2017년도부터 사용한 이 노트북 속에 때때로 써둔 글들이 참 많습니다. 완성될 기약 없이 쓰다 만 문장들, 한껏 멋을 부리며 쓰다가 스스로 부끄러워져 중단한 에세이, 뜨거운 다리미에 손끝을 덴 것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적나라한 속마음, 땅으로 꺼질 듯 괴롭거나 봄날 오후처럼 따스한 추억들, 평범한 하루의 기쁨들, 나태함, 지루함.. 어떤 하루의 나의 모습이 컴퓨터 창에 가득합니다. 하이고 많이도 써 놨네, 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마음의 온도가 조금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게 쓰기는 그러나 여전히 습관과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억지로, 꾸역꾸역 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잘 쓰든, 잘 쓰지 못하든 내 안에 쓰고 싶다는 마음이 지속된다는 것이 나는 늘 대견하고 대견합니다. 그래서 계속 쓰려고 합니다. 계속 쓰다 보면 뭐 어떻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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