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너를 묻고
2021년 3월 18일 새벽 5시 30분에 불이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용변처리를 스스로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뒷 베란다 문 앞 자기 화장실 옆에 쓰러져 있던 것을 아들이 새벽 5시 즈음에 발견했다. 벌린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왔고 뒷다리가 기역자로 꺾인 상태였다. 숨을 쉴 때마다 아주 작게 우는 소리를 냈다. 배 쪽은 여전히 따뜻한데 팔과 다리가 차가웠다. 불이가 좋아하던 녹색 담요에 옮겨 거실에 눕혔다.
우리 가족은 불이를 둘러싸고 앉아서 작게 신음하는 불이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들이 미안하다고 말하며 방바닥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불이가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이 잘 보살피지 못한 내 탓만 같다. 털은 보드랍고, 회녹색 눈은 머루 알처럼 반짝이는데, 이 아이를 다시는 안을 수도, 쓰다듬을 수도, 함께 누워 낮잠을 잘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믿을 수가 없었다.
불이는 삼십 분쯤 깊은숨을 몰아쉬고 가끔 야옹하는 울음소리를 내다가, 갑자기 아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팔을 쭉쭉 뻗고 울었다. 안아달라고, 살려달라고 했다. “불이야 괜찮아, 걱정 마,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미안해..”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런 말인데 마치 알아들은 듯 잠시 다시 숨을 고르다가 깊은 숨을 세 번 몰아쉬더니 이 세상과 작별을 했다.
깜깜했던 베란다 밖으로 훤하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죽기에 좋은 계절이 어디 있을까 만은 그래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중에는 나무에 물이 오르고 산에 진달래와 매화가 분분한 삼월이 좋을 것 같다. 베란다 아래로 목련이 봉우리를 막 터트리는 순간에 목련 꽃 같던 우리 불이가 생을 마쳤다. 피고 지고, 움트고 썩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 모든 일이 자연의 한 과정인 줄은 알지만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 관한 것일 때 그것은 하나도 자연스럽지도 당연한 것도 아니다.
따뜻한 물수건을 만들어 몸에 묻은 오물을 닦아 주는데, 불이의 눈이 여전히 반짝반짝하고 몸은 따뜻하니 금세 냐옹 하면서 일어날 것만 같았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뼈를 유지할 수 있는 만큼의 살을 빼고 전부 사라져 버렸다. 얼굴을 만지면 목둘레가 박카스 병처럼 얇아진 것이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조용히 그냥 눈물만 흘렸다.
세상에 태어나 아무런 죄 지음 없이 온통 사랑만 주고, 조용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여. 그 귀한 존재로부터 8년 동안 흠뻑 사랑을 받고 배웠다. 8년 동안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문 앞으로 달려와서 막 사랑에 빠진 애인처럼 끌어안고 핥아주고, 가르랑 노래를 불러주던 불이.
여름에 덮고 자는 모시 이불을 반으로 잘라 아이를 싸서 잘 묶었다. 미리 준비한 상자가 조금 작은 듯해서 불이가 불편할까 봐 아들이 애달아했다.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아들이 불이를 상자에 담으면서 꺼억꺼억 소리 내서 울었다. 너무 이른 시각도 늦은 시각도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덜 어려웠다. 불이가 저 세상으로 가면서까지 출근해야 하는 엄마 아빠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윤정이 말해주었다. 아침에 내 문자를 받고 나무관과 무지개 장신구를 만들어 가지고 오신 목사님, 그리고 나의 벗 윤정과 함께 지인의 선산 숲에서 작은 장례식을 했다.
미세먼지가 있기는 했지만 햇살과 바람이 부드러운 아침이었다. 숲의 부엽토는 적당히 축축하고 포실포실했다. 봉분 없이 평평하게 묻어주고 그 위로 낙엽을 듬뿍 덮어주었다. 아침 햇살이 기도하는 우리들 등 뒤로 떨어져 불이가 묻힌 자리에 길게 그림자를 만들었다. 햇살이 온종일 비추는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사님 말씀을 듣고 화장 대신 땅에 묻어 자연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도록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을 하자던 아들도 햇살과 바람, 새소리가 가득한 숲에 불이를 묻어서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혹시나 나무가 울창해지면 불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되셨는지 목사님이 푸른색 끈을 가지고 와서 상수리나무에 묶어주셨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했던 한 존재와 담담하게 이별을 하게 되었다. 한 달 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갑자기 생겼지만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불이가 덜 아프고 가능한 편하게, 가족들의 품에서 가는 것만을 빌었는데 불이가 엄마 마음을 헤아린 듯 그렇게 해주었다.
이제 불이를 묻고 첫 밤이 되었다. 밤의 숲은 캄캄하며 환하고, 소리 없이 소란스럽고, 생기와 생육의 에너지로 가득할 것이다. 탐욕도 시기도, 질투도 없는, 세상 무고한 존재들의 시간일 터이다. 평생을 삼십 평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우리 불이가 그 무고하고 드넓은 세상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된다. 녀석은 그곳에서도 예의 그 호기심 가득한 회녹색 눈을 반짝이고 있을 것 같다.
불이야, 하면 어딘가에서 고개를 흔들며 침대 위로 뛰어오를 것 같다.
안녕, 불이야. 안녕 불이야. 안녕 불이야.
불이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