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옛날 얘기를 하지, 미래 이야기를 하겠니?"
엄마 기일을 앞두고 유골이 모셔져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명절이 아닌 일요일 오후의 납골당은 적막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도 오늘처럼 뜨겁고도 눅눅한 날이었다.
납골함 유리문에 끼워 둔 사진에서 삼십 대의 엄마, 사십 대의 엄마, 오십 대의 엄마, 육십 대의 엄마가 활짝 웃고 있다. 삼십 대의 엄마와 우리 삼 남매는 창경원이라 불리던 창경궁의 코끼리 우리 앞에서 멋쩍게 웃는 사진으로 남았다. 우리 삼 남매가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다. 사진을 찍던 날이 신기할 정도로 명료하게 기억된다. 그날 서울로 가족 여행을 간다며 한껏 들떴던 마음,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입는다고 입었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흰색 쟈켓, 코끼리 구경 후에 남산에서 케이블카를 처음 탔던 떨림까지. 남동생들은 차렷 자세로, 엄마는 45도 옆으로 단정하게 서있다. 엄마는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다며 늘 파마를 해서 머리를 풍성하게 부풀렸었는데 사진 속 엄마는 왼쪽으로 가르마를 탄 단정한 커트 머리다.
사십 대 이후의 엄마 사진들은 모두 아빠와 여행 가서 찍은 사진들이다. 아빠가 골라서 넣어두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납골함 옆으로 엄마가 좋아하던 낡은 선글라스와 반쯤 쓰다 남은 연분홍색 립스틱 한 개가 보인다. 엄마가 좋아하던 것들이다. 모든 사진에서 엄마는 선글라스를 끼거나 머리에 걸치고 있다. 사진 한 장은 무슨 협회의 운동회에서 찍힌 것 같은데, 엄마가 아빠의 팔을 잡아끌면서 달리기 하는 순간이 포착되어 있다. 엄마의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난 여러 면에서 엄마를 닮았다. 선글라스와 립스틱을 좋아하지 않는 것만 빼고.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엄마와 여행을 많이 다닐 걸. 미국 유학 가기 전에 엄마와 외갓집이 있는 강경에 여행 가기로 했는데 출국 준비를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때는 유학 다녀와서 가면 될 것처럼 생각했는데.. 그 작은 약속조차 영원히 지킬 수 없게 될 줄 몰랐었다.
내게 아직 살아계신 또 다른 엄마가 있다. 우리 시어머니. 나는 스물한 살 때 지금의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나보다 스물두 살이 많은 어머니 나이를 생각하니 그때 어머니는 고작 마흔 넷이었다. 엄마 납골당을 들렸다가 남편과 함께 시댁에도 잠깐 들렀다.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미리 연락하지 못하고 한시간 전에 간다고 전화드렸는데 집에 가보니 저녁 준비를 벌써 다 해놓으셨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가 ‘복’이라고 쓰인 빨간색 부직포 가방을 들고 나오셨다. 지난주에 하도 큰 비가 내려서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는 패물이랑 현금을 다 꺼내서 며칠을 머리맡에 두고 주무셨다고 했다. 아산 지역에도 꽤나 비가 왔는데 우리는 제대로 안부 전화도 드리지 않았다. 노인들은 티브에서 물난리 뉴스를 계속 보게 되니까 실제보다 더 크게 걱정을 하신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거긴 비 많이 안 오죠? 그렇게 무심하게 전화 한 통 했을 뿐이다.
어머니가 가져온 빨간 가방에는 우리 아들 돌 때 받은 반지와 팔찌 열몇 개, 그 밖의 금붙이들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이제는 네가 가져다가 보관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빨간색 보석함에서 화이트 골드 목걸이를 하나 꺼내 주셨다. 가운데에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브이자로 세팅되어 있는 고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목걸이였다. 이제 당신이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가지고 있다가 다시 세팅해 쓰던지 아니면 어디 귀한 자리 갈 때 하라고 하신다. 남편은 옆에서 한번 해봐 하면서, 목걸이를 걸어주며 잘 어울린다고 좋아한다. 나는 어쩐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우는 걸 들킬까 봐 왜 벌써 이걸 주시냐고 조그맣게 말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동안 우리가 가끔 드린 용돈 대부분을 모아 두셨다며 꽤나 큰 액수가 든 적금 통장을 보여주셨다. 만기가 되면 줄 거라고 하신다. 오래 전 성당에서 분양받아 둔 묘자리도 처분했고,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와 현충원에 들어가면 신경 쓸 일도 없다며, 마치 유언하듯 말씀하신다. 아무리 부모님 연세가 많아도 죽음에 대해서 담담하고,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전히 당황스럽다. 남편은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영정 사진 이야기도 하고 교구 묘가 더 좋은데 왜 매도를 하셨냐고 탓을 하고 그런다.
엄마가 돌아가시신 후 엄마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해가 갈수록 새록새록 떠오르고, 마음에 쌓인다. 우리 엄마는 정말 재미난 이야기 꾼이었다. 어떤 모임에서도 이야기로 사람들을 깔깔깔 웃게 만들곤 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잡고 지난 얘기 하는 것을 좀 지겨워 하면서 엄마는 왜 옛날 얘기만 하냐고 타박을 하곤 했는데, 그때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럼 엄마가 너랑 옛날 얘기를 하지 미래 얘기를 하겠니? 정말 맞는 말 아닌가?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엄마 얘기를 잘 들어 적어 두었다면 어땠을까? 아직 살아계신 어머니의 이야기도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어머니에게 듣지 못한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까? 오늘 문득 더 늦기 전에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