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아들과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면서 문득 돌아서서 녀석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연하늘색 스웨터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녀석. 봄기운 가득한 광장을 가로지르는 뒷모습이 왜 그리 작아 보이는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기타를 전공한 아들은 2년제 예술대학의 졸업과 함께 '백수'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다고, 군대 갔다 오면 영영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난다고 한다. 이런 고백에 무슨 위로가 어울리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었지만, 긴 속눈썹을 내려 깔고 녀석이 겁이 난다고 말할 때, 사실은 나도 겁이 났다.
세상은 빠르고 더 편리해졌다고 하는데 청춘들의 삶은 왜 갈수록 힘겨워지는가.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인생이라서 묵묵히 지켜보려고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하게 된다. 시행착오도 삶의 한 과정이고, 결국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 먼저 나간다. 아들은 언제나 알았어 엄마라고 순하게 답 한다.
공연히 뭐라도 사주고 싶어서 운동화 사줄까 했더니 두 켤레 있으니 충분하다고 한다. 엄마 연봉이 높다고 거들먹거려 봐도 괜찮다며 총총히 집으로 돌아가는 녀석. 내가 아들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으니까 벤치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빙그레 웃는다. 당신 마음이 어떤 마음인 줄 다 안다는 미소다. 세상에 부모 마음은 다 비슷하니까.
아들, 용기 내서 너 가고 싶은 곳으로 뚜벅뚜벅 걸아가렴. 가다가 힘들면 쉬어도 된다. 되돌아 걸어와도 되지. 안될게 뭐야.
언젠가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대화를 한 적이 있지? 너는 그 이유를 여전히 찾는 중이겠지만.. 음악이 너의 밥이 되지 못하더라도 너의 평생의 벗은 될 수 있을 거라고 엄마가 말했던 거 기억나? 엄마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밥걱정 없이 사는 곳이 낙원이라는 생각을 해. 아직 여기는 낙원이 아니라서 네가 가는 길이 얼마나 고될지 엄마는 가끔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파.
마르고 긴 너의 손가락을 보면서 오래전 외할아버지 가 서울에서 자취하던 엄마를 찾아왔을 때가 기억났다. 돼지갈비를 사주셔서 먹는데 할아버지가 엄마 손목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시더라. 왜 이리 말랐냐 하면서.. 엄마도 이제야 외할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겠구나. 사랑하고 응원한다. 아들.
pohto by 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