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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Apr 21. 2021

더 괜찮은 딸이 될 수 있었을까?

꽃처럼 사라진


동백꽃 무늬의 린넨 블라우스가 걸려 있는 옷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엄마가 입으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이즈를 가늠해 본다. 엄마는 우아한 스타일보다는 표범 무늬 블라우스에  선글라스 같은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했지만,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스타일도 바뀌셨겠지 생각하면서..  


가게 안으로, 함께 있던 친구의 팔을 끌었다. “이거 너네 엄마한테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니?” 친구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30만 원이 넘는 블라우스였는데도 별로 망설이지 않고 바로 구입했다. 자기 옷 사겠다고 쇼핑 나와서 엄마 옷에 돈을 더 많이 쓰는 친구가 예쁘면서도 샘이 나게 부럽다.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엄마표’  옷들이 눈에 밟히는 요즘이다. 시어머니가 생존해 계시지만 시어머니는 옷에 사치를 부리는 것을 진정 싫어하셔서 옷 선물은 삼가야 한다.


엄마는 옷 쇼핑도 좋아했는데, 제대로 옷 한 벌 사드린 기억이 없다. 버젓한 직장 다니면서 왜 엄마에게 선물하는데 그렇게 인색했는지 모르겠다. 늘 받기만 해서 뭘 해드릴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고, 그냥 그때는 뭐든 나중에 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나중에 여행도 같이 다니고, 나중에 선물도 더 해드리고, 나중에 이야기도 더 나누고, 나중에 , 나중에.. 그때는 내 일, 내 공부, 내 아이가 늘 우선이어서 엄마는 언제나 최후 순위로 밀어 두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나의 TO DO 목록의 맨 아래 칸에 엄마가 밀쳐져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다 후회가 된다.


매화, 살구꽃, 복사꽃, 자두꽃이 연달아 필 무렵이면, 과수원으로 꽃구경 오라고 성화를 하셨는데, 늘 내년 봄에 보겠다고 미뤘다. 은퇴 후에 가꾸신 과수원의 꽃 대궐을 엄마는, 물론 아빠도 늘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셨는데 그 작은 소망 하나 들어드리지 못했다. 매년 피는 꽃이니 언제든 보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 돌아가시고 한 해지나  우리 집 과수원이 있는 지역에 과수나무병이라는 것이 돌아서 그 일대 과실수가 모조리 잘려나갔다. 그때 우리 집 과수원의 나무들도 잘려서 봄이 와도, 엄마가 보여주고 싶어 하던 그 꽃대궐은 더 이상 없다.  

 

어느새 나의 TO DO 목록의 가장 위에 있던 아이 양육도 이제 다 끝났고, 더 이상 뭘 배운다고 새벽에 나갈 일도, 퇴근하면 헐레벌떡 대학원 수업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정말이지 시간이 많은데.. 엄마 선물 사고 여행 가고 할 충분한 돈도 있는데.. 그렇게 해 드릴 엄마가 안 계시다.

 

오랜만에 어쩌다 친정 가면 안방에 들어가 자리 펴고 누워서 밀린 잠을 보충하기 바빴었지. 늘 피곤하고 바쁘고, 어딘지 화가 난 듯 분주한 시절의 나를 엄마는 얼마나 애달아했던가.. 이제 나는 더 이상 청춘기의 열정에, 허튼 꿈에 스스로를 태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중년이 되었고, 늙어가는 엄마의 허전함을 품고 이해도 할 법한 나이가 되어서,  지금이라면 꽤 괜찮은 딸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엄마가 나를 볼 때마다 애잔해할 일도 걱정할 일이 없을 텐데... 이 모든 것을 기쁘게 알리고 다정함을 보여드릴 방법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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