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사라진
동백꽃 무늬의 린넨 블라우스가 걸려 있는 옷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엄마가 입으면 참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이즈를 가늠해 본다. 엄마는 우아한 스타일보다는 표범 무늬 블라우스에 큰 선글라스 같은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했지만,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스타일도 바뀌셨겠지 생각하면서..
가게 안으로, 함께 있던 친구의 팔을 끌었다. “이거 너네 엄마한테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니?” 친구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30만 원이 넘는 블라우스였는데도 별로 망설이지 않고 바로 구입했다. 자기 옷 사겠다고 쇼핑 나와서 엄마 옷에 돈을 더 많이 쓰는 친구가 예쁘면서도 샘이 나게 부럽다.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엄마표’ 옷들이 눈에 밟히는 요즘이다. 시어머니가 생존해 계시지만 시어머니는 옷에 사치를 부리는 것을 진정 싫어하셔서 옷 선물은 삼가야 한다.
엄마는 옷 쇼핑도 좋아했는데, 제대로 옷 한 벌 사드린 기억이 없다. 버젓한 직장 다니면서 왜 엄마에게 선물하는데 그렇게 인색했는지 모르겠다. 늘 받기만 해서 뭘 해드릴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고, 그냥 그때는 뭐든 나중에 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나중에 여행도 같이 다니고, 나중에 선물도 더 해드리고, 나중에 이야기도 더 나누고, 나중에 , 나중에.. 그때는 내 일, 내 공부, 내 아이가 늘 우선이어서 엄마는 언제나 최후 순위로 밀어 두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나의 TO DO 목록의 맨 아래 칸에 엄마가 밀쳐져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다 후회가 된다.
매화, 살구꽃, 복사꽃, 자두꽃이 연달아 필 무렵이면, 과수원으로 꽃구경 오라고 성화를 하셨는데, 늘 내년 봄에 보겠다고 미뤘다. 은퇴 후에 가꾸신 과수원의 꽃 대궐을 엄마는, 물론 아빠도 늘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하셨는데 그 작은 소망 하나 들어드리지 못했다. 매년 피는 꽃이니 언제든 보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 돌아가시고 한 해지나 우리 집 과수원이 있는 지역에 과수나무병이라는 것이 돌아서 그 일대 과실수가 모조리 잘려나갔다. 그때 우리 집 과수원의 나무들도 잘려서 봄이 와도, 엄마가 보여주고 싶어 하던 그 꽃대궐은 더 이상 없다.
어느새 나의 TO DO 목록의 가장 위에 있던 아이 양육도 이제 다 끝났고, 더 이상 뭘 배운다고 새벽에 나갈 일도, 퇴근하면 헐레벌떡 대학원 수업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정말이지 시간이 많은데.. 엄마 선물 사고 여행 가고 할 충분한 돈도 있는데.. 그렇게 해 드릴 엄마가 안 계시다.
오랜만에 어쩌다 친정 가면 안방에 들어가 자리 펴고 누워서 밀린 잠을 보충하기 바빴었지. 늘 피곤하고 바쁘고, 어딘지 화가 난 듯 분주한 시절의 나를 엄마는 얼마나 애달아했던가.. 이제 나는 더 이상 청춘기의 열정에, 허튼 꿈에 스스로를 태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중년이 되었고, 늙어가는 엄마의 허전함을 품고 이해도 할 법한 나이가 되어서, 지금이라면 꽤 괜찮은 딸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엄마가 나를 볼 때마다 애잔해할 일도 걱정할 일이 없을 텐데... 이 모든 것을 기쁘게 알리고 다정함을 보여드릴 방법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