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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May 25. 2021

봄비의 마술

모두가 저마다의 향기가 있다.

페퍼민트, 스피아 민트, 애플 민트, 치커리와 고수... 이름에서 향기가 묻어 나는 허브들이 텃밭에 지천이다. 지난겨울 동난 모두 얼어 죽은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아가 새 입 같은 싹이 돋아 났다. 그리고 봄비 몇 번에 쑥쑥 자라나 밭의 몇 고랑을 차지하고 있다.


민트 잎 한 움큼에  뜨거운 물을 부어 30초를 우리면 코와 목이 시원해지는 허브차를 만들 수 있다. 일요일 오후 J의 텃밭일을 돕다가 숲 그늘을 바라보며 허브차를 마셨다. 수종에 따라, 빛이 들고 나는 것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초록과 연둣빛, 은빛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색을 바꾼다. 허브차의 향기와 함께 그 초록 물결이 내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J가 새벽마다 화원 가꾸듯 하는 숲 아래 작은 텃밭에는 모종을 심어 재배하는 작물도 많지만 바람에 날아온 씨앗들이 떨어져 저 혼자 자라나는 것들도 많다. 미나리나 쑥, 돌나물, 깻잎이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난다. 올해는 수레국화 여러 포기가 저 혼자 자라서 보라색 꽃을 피워냈다.

 

몇 주 전에 사다 심은 쌈채소 모종은 지난주부터 뜯어먹을 정도로 커졌다. 밭일을 해보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J 덕분에 건강하고 싱싱한 채소를 매일 맛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농약이나 비료, 제초제를 쓰지 않는 대신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뽑고, 거름으로 쌀겨를 두둑하게 덮어주어서  말 그대로 유기농으로 길러낸다. 보약 같은 채소들을 맛볼 수 있는 것도 행복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작물들을 보는 것도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겠다. 아기 손가락만 했던 적상추와 로메인, 케일, 겨자채가 몇 번의 봄비를 맞고 나서 어른 손바닥 만해졌다. 공기 중에 있는 질소 성분이 비와 함께 땅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라는데, 과학보다는 마술적 이해를 더 좋아하는 나는 봄비가 마술 지팡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쌈 채소를 뜯어 낸 자리에서 허브만큼은 아니지만 쌉싸름한 상추 맛 향이 터져 나온다. 밭일을 돕고 나면 손가락에서는 허브 향도 나고 상추 향도 나고 고수와 참나물 향도 난다.

 

다음 주말에는 텃밭에서 비건 파티를 하기로 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채소를 이용해 샐러드를 만들고 고수와 허브를 넣어 구운 빵을 텃밭에서 나눠 먹는 소풍이다. 내가 개발한 레몬 드레싱을 선보일 예정이다. 유기농 레몬  개를 착즙  후에 사과 식초와 , 약간의 소금 섞으면 상큼 달콤한 드레싱이 완성된다. 각종 쌈채소를 손으로 듬성듬성 잘라서 우묵한 그릇에 담고  익은 토마토를 썰어 올린  드레싱을 뿌린다. 향이 좋은 올리브 오일을 한두 스푼 두르면 완성!

 

텃밭에 앉아서 허브차를 마시며 비건 파티를 계획하는 일요일 오후 4시. 마음에 샘이 있어 맑고 신선한 물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색색의 꽃을 피워내던 3월과 4월의 나무들은 어느새 작은 열매들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여름은 열매, 열리다에서 시작된 말이 분명한 것 같다.

 

허브차를 마시고 갓을 마저 다 뽑아 다듬었다. 갓의 뿌리 끝에서 매콤하고 알싸한 향이 났다. 허브과 식물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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