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시계와 알람
아침에 일어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 알람을 끄는 일, 그리고 하루의 끝에 하는 일은 알람을 세팅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마치 종교의식처럼 알람을 설정하고 끄는 일을 초등학교 이후로, 그러니까 삼십여 년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삼십 년이라니.. 이 정도 훈련기간이면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지는 못해고, 자동반사적으로 알람이 울기도 전에 눈을 번쩍 뜰 법도 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에도 열심히 울리는 핸드폰을 눈도 뜨지 않고 손으로 더듬어 꺼버렸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생활의 달인의 신공도 충분히 쌓을 세월 동안 여전히 알람에 맞춰 일어나기에 매번 실패한다는 사실이, 그러면서도 매일 밤 취침 전 알람 다시 설정하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핸드폰 알람을 사용하기 전까지 내게 거쳐 간 탁상시계들은 아마도 수십 개는 족히 될 것 같다. 가장 오래 썼던 세이코 브랜드의 파란색 타원형 알람시계, 시계 옆에 귀처럼 종이 달린 무지막지하게 큰 자명종, 알람이 울릴 때 몸체를 따라 노란 형광이 들어오던 오리 시계, 알람과 함께 라디오가 자동으로 켜지던 라디오 시계. 알람 소리도 꽥꽥, 꿀꿀 동물 울음을 내는 것부터 교회 종소리, “일어나, 일어나 이 잠꾸러기야” 예의 없이 반말하던 녀석. 꿍짝 꿍짝 아침부터 트롯 경연 분위기를 조성하던 녀석, 귀청이 떨어질 만큼 큰 소리로 울면서 절대 끌 수 없도록 되어 있던 것 까지.. 추억의 애장품들이 문득 떠오른다. 나를 위해 그렇게 아침마다 애타게 울던 녀석들의 종말은 안타깝게도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에서 낙상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었다.
알람 시간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이 약한 의지력 탓같아 자괴감이 들면서도 요란한 기계음에 기대어 아침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애잔하고 처량하기도 하다. 사람의 몸에는 생체시계라는 것이 있어서 빛이 차단된 환경에서도 자연스럽게 시간을 분간하여 일어날 때와 자야 할 때를 구분한다고 한다. 생체시계는 인류가 태양과 달, 별을 따라 생활하며 만들어낸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현대인들은 수 만년 걸쳐 습득한 이 생체시계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져도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해가 뜨면 당장 일어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호통 치는 사회에서 생체시계가 제대로 작동되기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삼십여 년을 훈련해도 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몸(혹은 정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지키지도 못할 것을 계속 강요하는 그 마음이야 말로 강박이고 틀린 것이라고 선언해야 옳은 것이 아닐까?
알람이 없는 삶을 꿈꿔본다. 나는 사실 그 너머의 삶을 꿈꾼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라든지, 아침저녁 우는 종달새의 노래라든지, 살구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밤나무의 잎과 열매들이 툭툭 떨어지는 부드러운 소리에 눈을 뜨고, 잠이 드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러나, 당장 오늘 밤부터 알람 세팅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 정말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