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사라진
토요일 낮잠에 꿈을 꾸었다. 어느 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누군가를 뒤쫓아 죽도록 달려가고 있었다. 달빛 환한 밤이었다. 그것은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숲 쪽으로 뛰어가는 중이었다. 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내게 무척 소중한 무엇이었던 것 같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렸지만 간격은 점점 더 멀어지고, 불러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숲의 입구에서 잠깐 멈칫하더니 그대로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숲은 포효하는 야수의 목구멍처럼 어둡고 아득했다. 나는 감히 그 검은 숲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길 잃은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온몸에 슬픔이 가득 찬 듯했다. 가위눌렸던 몸의 긴장을 풀려도 팔다리를 조금 흔든 후 그대로 누워서 꿈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그리도 애달게 붙잡고 싶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운동장 끝에 나타난 검은 숲에는 무엇이 있을까?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가만히, 가만히 꿈속의 그 애절했던 마음을 따라다녀 보았다. 해 질 녘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꿈이었다.
나로부터 사라지는 것들, 그러니까 찰고무 같은 생기나 발랄함, 열정이나 용기로 대변되는 젊음, 혹은 어린 아들로부터 받았던 절대적 사랑 같은, 시간과 더불어 사라진, 그 불가역 한 것들을 나는 되찾고 싶었나 보다. 꿈에서라도 그것들을 멈춰 세워서, 만져보고 냄새 맡고, 눈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역 한 것이기에 꿈결에서 조차 절대로 멈추지도,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내 무의식의 어딘가에서 소멸을 깊이 슬퍼하고 있었다. 나는 그 슬픔을 찾아내 달래주고 애도하고 싶었다.
오늘처럼, 꿈이 주는 어떤 느낌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억지로 감정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유영하듯 감정의 물살에 몸이 둥실 떠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슬픔 이 헤엄쳐 물가로 나올 때까지 나를 내버려 두자. 슬픈 눈의 나는 아직 어리고, 눈망울이 맑다. 그립거나 고독하거나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