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의 아기인 것처럼
엄마가 암 투병 중일 때 암환자를 위한 단식원에 간 적이 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찾아간 그곳의 운영자는 맑은 얼굴을 한 중년의 여인이었는데, 단식으로 암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을 하는 듯했다. 수술이 어려울 정도로 암이 진행된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누군가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녀가 말하는 단식의 원리가 과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듣기에는 그럴듯했다. 몸으로 들어오는 영양분을 끊어서 염증 유발 요인을 고사시키고, 풍욕과 같은 운동으로 몸속에 쌓여있는 노폐물과독소를 배출시켜 병과 싸울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단식을 최소 이주는 해야 하지만 엄마가 이미 기력을 잃은 상태라 닷샛 동안 단식을 하고, 같은 기간 동안 보식을 진행하자고 했다. 한 끼 만 굶어도 큰일 나는 것으로 알며 살아온 엄마를 모시고 (공연히 아빠까지 동반하여) 단식원에 간 것은 단식으로 암을 고칠 수 있다고 믿어서라기보다는 달리 아무것도 해 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낮 동안은 물과 죽염만을 먹고 해질 무렵 약간 당분이 가미된 효소차 한잔을 마셨다. 새벽에 일어나 냉욕과 온욕을 삼십 분 동안 하고 매시간 풍욕을 하고, 가벼운 산책과 붕어운동, 다리 흔들기 같은 독소를 빼준다는 몸동작을 땀이 나고, 숨이 찰 정도로 번갈아 했다. 시간에 맞춰 체계적으로 이런 것들을 하려니 무척 바빠서 배고플 시간도 없었다. 엄마는 당신 때문에 공연히 굶고 있는 남편과 딸에게 미안해서, 나와 아빠는 엄마가 애잔해서 서로에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명랑하게 그 과정을 즐기려고 했다.
우리가 있는 동안 다른 환자가 없어서 널찍한 한옥집을 우리 가족이 다 썼다. 언뜻 보면 가족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가 늦여름 무렵이었는데 햇살이 참 투명했다. 문풍지가 발라 진 격자무늬 창살로 스미는 햇살이 하도 투명해서 그 빛을 받고 누워있던 엄마의 마른 얼굴이 사라진 것처럼 하얗게 보였다. 옷을 다 벗고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얇은 이불을 덮어썼다 활짝 펼쳤다 하면서 바람 목욕(풍욕)을 하고 나면 온 몸이 나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그대로 함께, 벗은 채로 누워서 즐기던 잠깐의 낮잠. 우리는 몸을 새우처럼 말고 갓난아기처럼 쌕쌕 소리를 내면서, 서로가 서로의 아기인 것처럼, 어쩌면 엄마인 것처럼 함께 낮잠을 잤다. 해질 무렵, 셋이서 오솔길 산책을 마치고, 한옥집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무슨 거사를 치루 듯 청회색 사발을 감싸 들고 주인장이 내어 주는 효소차를 홀짝홀짝 아껴 마셨다. 그런 날들이 암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족 여행이었다면 하고 얼마나 바랬던가. 엄마가 아프기 전에 그런 오롯한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엄마와 아빠와 그렇게 꼭 붙어 다섯 밤을 보낸 것은 십 대 이후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먹는 일이 일상에서 빠지면 시간 참 길게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목욕을 하면서, 풍욕을 하면서, 툇마루에 앉아서, 다섯 번의 낮과 밤 동안 엄마와 그리고 아빠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엄마가 건네던 농담에 셋이서 웃었던 어떤 순간만이 또렷하고 선명하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으로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엄마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런 말들이 엄마의 죽음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용기가 없어서 입에서 꺼내지 못했다. 좀 더 다정하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엄마는 딸의 마음을 늘 먼저 알아보는 존재였으니까 말하지 못한 내 마음도 알아차렸겠지. 그랬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