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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May 13. 2021

“남편이 오십이세요? “

오지랖이 무럭무럭

얼마 전 선술집에서,

 

삼십 대 중반 정도 되보이는 여자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 남편이 이제 진짜 오십이야” 그 목소리는 마치 "남편이 암에 걸렸어”라거나 "남편에게 새 애인이 생겼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들렸다. 고개를 돌려 여자를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웃어서 미안해요. 저희 남편도 오십이거든요.. 근데, 어쩌다 아직 젊으신데 그런 나이 많은 남편을 만났어요?” 무안한 마음에 변명처럼 말을 건넸다. 다행히 여자는 낯가림 없이 웃는 얼굴로 말을 받아 준다.  “그러게요. 내가 미쳤죠. 정신이 잠깐 나갔던 거죠.” 그러면서 깔깔깔, 투명하게 웃어 버린다. 그 말에 그녀와 함께 있던 친구도 웃고, 나는 그녀들이 귀여워서 웃고, 다 같이 선술집이 떠나갈 듯 웃었다.


여자는 결혼할 때는 나이차가 뭐 대수인가 했는데 남편이 오십이라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우울하고, 창피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오십이지만 남편이 오십 인 게 싫어 죽겠다고 말해주었다. 여자는 이 말에 더 크게 웃으며 언니는 여전히 예쁘고 목소리도 좋다며 칭찬을 해줬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여자가 어쩌다 오십이나 된 남자를 만났을까 생각했다. 요즘 부쩍 나이 차별주의자가 된다. 이것도 나이 탓인가?


뒤늦게 합류한 친구가 옆 테이블 여자들과 거의 합석 태세인 나를 보며 아는 사람이냐고 눈짓 했다. 아니라고 하니, 나이 들어 오지랖만 넓어진다면서 또 웃었다. 오지랖이 넓어지니까 웃을 일도 많아진다.


할머니들이 지하철이나 시장에서 말을 걸면 막 피해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는 유모차를 끄는 엄마에게   “아가가 몇 살이에요?” 라고 묻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 내게 그러면 경계심이 들던  기억이 있어서 조심하려고 하는데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며칠 전에 지하철에서 오지랖의 절대 경지를 경험했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종로행 3호선에 그날따라 할머니들이 많았다. 경로석의 두 할머니에서 시작된 대화가 금세 그 칸 전체 노인들의 대담회로 이어졌다.


할머니들 대화가 계속되자 젊은 사람들은 슬그머니 칸 안쪽으로 피했다. 청력이 약한 탓인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한 사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얘기를 시작하고, 화제는 일관성도 없다. 돌림노래 같은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지하철 안이 시끌벅적 해지자 승객들은 점점 피곤한 표정을 짓지만 노인들은 눈치가 없다. 나란 사람만이 할머니들 대화에 빠져드는 것 같다. 소음처럼 들리는 그녀들의 대화는 자세히 들어보면 진짜 재미있다. 할머니들이 귀여워 보이는 것도 나이 탓인가?      


할머니 1 _ “아니 몇 살인데 그렇게 젊우?”

할머니 2_ “호호 젊긴 무신. 올해 칠십 오인데. 호호호.”

할머니 3_ “아니 나보다 두 살 어린데 머리숱도 많고 곱다 고와”

할머니 2_ “호호, 이거 가발이야. 가발 ”

할머니 4_ “진짜 가발이야? 나도 가발 써봤는데 영 엉터리던데..”

할머니 2_ “야휴 비싼 걸 써야지. 한번 써보려오? 호호호”(금세 가발을 벗을 태세다)

할머니 6_  “아휴 세상 다 귀찮아. 가발 썼다 벗었다 을매나 귀찮은데, 그냥 나처럼 모자를 쓰고 다녀”


(아이쿠, 자칫 할머니들의 대화에 끼어들 뻔 했다.)


빛의 속도로 오지랖을 키우고 있는 요즘, 언젠가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다면', 지하철에서 낯선 할머니에게 가발을 벗어 보여주는, 그 오지랖의 절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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