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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Sep 03. 2021

“비 오는 날 우산을 버려야지”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순식간에 폭우로 변했다. 작은 우산 하나에 두 어깨를 겨우 겹쳐 비를 피해 보는데, 그나마도 우산이 휙 뒤집혀 버렸다. 뒤집힌 우산을 움켜쥐고 목적지인 영화관까지 걸어가는 십 여분 사이, 샤워한 것처럼 완벽하게 젖어버렸다.


치마 끝을 모아 짜서 물을 빼고, 몸의 빗물을  손바닥으로 대강 털어 낸 후 급하게 상영관을 찾아 들어갔다. 하필 예약한 좌석이 정중앙. 미안한 몸짓으로 중간  자리까지 엉거주춤 들어가는데, 드레스에서 물방울이 뚝뚝, 옆 사람 신발 위로 떨어진다. 일찍 온 관객들은  밖에 폭우가 쏟아지는 줄 모르는 눈치다. 순식간에 옷 입은 채로 샤워하고 영화 보러 나온 용감한 여자가 되어 버렸다.   


영화 보는 두 시간 동안, 젖은 옷의 축축함, 소름 돋은 어깨와 팔의 오소소 함,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의 한기가 불편하기는커녕 묘하게 기분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문득, 내가 비 맞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비가 오면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새침한 담임은 나를 비난했다.


“네가 무슨 종이인형이라도 되니? 비만 오면 학교를 안 오게.”


담임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비를 피하려고 학교에 안간 게 아니라, 비가 오는데 어떻게 하찮은 학교에 갈 수 있나 싶어 학교에 가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이 없어 호젓한 골목을 우산을 쓰다 말다 하면서 싸돌아다니거나 엄마의 잔소리를 빗소리에 흘리며 창이 큰 내 방에서 뒹굴 거렸다.


소나기가 오면 운동장에 나가 비를 맞았다. 운동장의 건조한 모래알은 찬 빗줄기에 놀라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흩어지다가, 귀여운 물고랑을 운동장 가득 만들어 냈다. 나는 발가락으로 물고랑을 더 넓게 열거나 새로운 둑을 만들면서 온몸이 덜덜 떨릴 때까지 빗속에 있었다.


그렇게 비를 맞고 놀다 보면, 엄마의 꾸중보다 무서운 신열이 찾아와서 밤새 앓아눕기도 했는데, 심하게 아프고 난 아침이면 기운은 없어도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잊고 있었는데, 내게 있어 좋아함이란 언제나 그런 것들이었다. 경계의 끝으로 걸어가는, 후유증을 기꺼이 각오하는.


그런데 언제부터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내 일상에서 하나씩 사라져 갔다. 잠깐 내리는 비에도 서둘러 우산을 펴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도, 예쁜 것들에 대한 동경도, 멋진 친구들도 강렬하게 좋아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자기들도 다들 그렇다고 했다. 모든 것들이 그저 그렇고 시시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무슨 주제에도 나이 때문에 그래,라고 누군가 말하면 모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었다.  


나이 먹는 일이란 하와이안 셔츠의 물빠짐 같은 걸까? 시간과 함께  원색의 문양들이 지워지듯, 나이 와 함께 감정도 탈색되어 무색한 마음이 되는걸까? 무색하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김사인의 시집 제목처럼 성급한 마음들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좋아하는’ 단계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예기치 않게 비에 홀딱 젖어 냉장고 안처럼 차가운 영화관에 앉아 있다 돌아온 늦은 밤,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운동장에서 날뛰듯, 하나도 걱정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 있었던 어떤 시절의 나를 생각했다. 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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