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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Aug 24. 2021

확실히 묻어 드립니다.

화산재 모래찜질 회관의 노인


이마에 흰 수건을 동여맨 노인 한분이  화산재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가 외국인이란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한참이나 무언가를 설명했다.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바닷가 리조트의 화산재 찜질 회관에서였다. 일본어를 모르는 내게 그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는 어떤 제례의 주술처럼 들렸다.


노인은 화산재를 한 삽씩 떠서 나를 덮어 나가기 시작했다. 발가락에서 시작해서 종아리, 허벅지와 복부, 양 팔과 가슴, 목 끝까지, 동그란 얼굴만 빼고 몸 전체가 검은 재에 묻혔다. 작업을 마친 노인은 예의 그 톤으로 다시 무언가를 설명하고, 머릿수건을 풀어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훔쳤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8월의 한여름, 이미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화산재의 뜨거움이 더해져 금세 온몸에 땀이 차올랐다. 답답하고 찐득한 무더움이 아니라 모닥불 앞에서 볼이 빨갛게 익어가는 것처럼 기분 좋은 뜨거움이 세포 하나하나를 활짝 열어젖히는 듯했다.


그 리조트에서 손님들을 화산재에 ‘파묻는’ 노동은 전통적(?)으로 남자 노인들의 몫인 듯했다. 160 정도 키의 백발의 노인들은 땀에 젖은 얼굴에 형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구릿빛 얼굴은 머리에 두른 흰 수건과 대비되어 더 검게 번들거렸고, 작은 삽으로 화산재를 떠서 관광객의 몸에 얻는, 단순하다면 더없이 단순한 그 작업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었다.

리조트가 1970년대 지어졌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은 머리카락이 화산재만큼이나 검었던 시절부터 같은 일을 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화산재를 삽으로 뜨고, 헤치기를 반복했다는 뜻일까? 날마다 묵묵히 화산재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들어와  백합처럼 흰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주술처럼 들리는 그 말들을, 수 없이 반복했겠다. 그것은 그냥 밥벌이, 혹은 밥벌이의 고달픔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깃든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노동을 낭만화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정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이 일하는 모습은 힘든 노동이라고 납작하게 표현하기엔 너무 무례한, 어떤  경건함이 묻어 있었다.


화산재 찜질이 리조트 이용객에게 제공되는 무료 서비스라고 해서 이색 체험 삼아 해봤을 뿐인데 노인들의 숙연한 작업 태도 덕분에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13조나 된다는  몸의 세포들이 화산재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 정화되기를 기도했다. 바다보다  깊은 곳에서 끓어 올라   화산재의 열기가   안의 헛된 열정과 삶의 허기를  태워주기를 바랐다.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노인은 다시 나의 어깨 옆으로 다가와 마무리 인사를 했다. 마치 “이제 당신의 몸은 정화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노인이 시키는 대로 발끝을 움직여 화산재 무덤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찜질 회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뜨거웠던 한여름의 공기가 그렇게 청량하고 시원하게 느껴질 줄이야...


노인들은 당신의 노동이 타인의 몸에 부르는 정화의 기쁨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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