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계획, 아직은 괜찮은
얼마 전 삼십 대의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새해 계획은 안녕하심?”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이한 지 오래됨 ㅠㅠ”
생각해보니 그랬다. 언제부터였지?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사 모으던 습관이 사라졌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신년 다이어리를 구입하지 않게 된 때부터? 기억나지도 않지만, 어느해부터 새해 계획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1월 1일을 아침을 맞게 되었다
작심삼일도 못 채우고 흐지부지될망정 새해 계획만큼은 죽도록 열심히 세우는 유형의 나였는데, 나이 좀 먹었다고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새해는 새 다이어리와 함께. 서점을 두루 돌며 취향 저격하는 다이어리를 구입하는 맛으로 12월을 보냈다. 수십 년째 모아 온 쓰다만 다이어리들이 한 상자다. 지난 시절의 다이어리 변천사로 나의 취향 변화를 확인할 수도 있다. 누구나 한 번을 가져보았을 표지에 자물쇠가 떡 하고 붙어 있는 비밀 일기장부터 귀엽고 발랄한 디자인을 거쳐 프랭클린 다이어리 같은 실용적인 아이템에서 피카소가 썼다는 몰스킨까지. 오래전 다이어리는 버리지도 못하고, 베란다 창고에 모셔두지만, 절대 열어 보지는 않는다. 마흔 무렵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20대에 쓴 다이어리를 잠깐 펼쳐본 이후로는 절대로. 세상에, 20년이 지났는데 지난주에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기쁨, 슬픔, 괴로움의 자잘한 감성들이 그대로였다. 기분이 이상하고, ‘진화’ 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고.
다이어리 첫 장 가득 거창한 독서 계획을 쓰고, 여행 계획도 쓰고, 노래, 춤, 그림, 외국어 공부 계획도 세웠더랬다. 계획이란 지키는 맛이 아니라 세우는 맛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던 이십 대와 삼십 대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렇게 우기기에도 너무 민망한 나이가 되어 슬그머니 무계획으로 돌아선 것일까?
저녁을 함께 먹던 친구가 자기는 더 이상 무언가 사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다른 친구들도 다 엇비슷하다고, 물론 나도 좀 그런 편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삶에 필요한 웬만한 것은 어느새 다 갖추고 있는 오십 대의 우리는 욕망이라는 전차에서 내린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고급 소재의 겨울 코트와 아름다운 사물들을 탐하지 않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나 그런 욕망과 함께 새로운 목표나 도전을 향한 욕망도 사라진 것일까?
생각해 보니, 나이 들면서 더 커진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숲을 거닐고 싶고, 햇살이 저무는 것도 모른 채 읽고, 쓰는 날들을 더 많이 갖고 싶다. 화려하고 멋진 풍경을 찾아 여행하기보다는 지리산 매동 마을에 머물며 푹푹 나리는 눈길을 걷고 싶다. 무용하다면 무용한 것들이나, 모두 시간이 드는 일들이다. 나는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직장인이 나는 자유로운 시간에 목마르다. 그러니까 현재의 내가 가장 욕망하는 것은 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시간을 욕망한다는 말이 성립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욕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 같다. 달라진 욕망은 다이어리에 적어서 계획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르겠다.
후배의 카톡 덕분에 오랜만에 새해 계획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설날도 지났지만 아직은 새해라고 우겨볼 만한 시점이다. 더 늦기 전에 몰스킨 다이어리 하나 사서 새해 계획 한번 세워볼까? 또 모르지. 이십 년쯤 지나서 창고에서 박스를 꺼내 2022년의 다이어리를 들춰볼지도.
어떤 시간은, 데자뷔와 반대로, 그것을 경험하는 순간에, 이 순간을 내가 평생토록 기억하게 될 것을 알게 된다. 신년 계획에 대해 생각하는 이 순간이 그럴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20년 뒤의 내가 2022년의 다이어리를 들춰보면서 지금의 생각을 떠올린다면, 이 시절 나의 '시간 욕망'에 대해 생각하겠지. 올 한 해 그 욕망을 채워보고 싶다. 미국에서 셀프 안식년을 보냈던 때부터 8년이 되었고, 조금 쉴 시절이 된 것 같다.
그냥 예전의 나처럼 몰스킨 다이어리를 사서, 첫 페이지에 계획을 써보자. 지키는 맛보다야 덜 하겠지만 세우는 맛이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